[창간특집]“취재의 자유는 국민 알 권리 충족 위한것”

  • 입력 2003년 3월 31일 17시 55분


코멘트
《참여정부 출범 이후 청와대의 기자실 개방과 정례 브리핑제도의 도입, 정부 부처 사무실 방문취재 금지등 언론의 취재환경에 큰 변화가 있었다. 이런 일련의 조치들 만으로 새 정부의 언론정책을 예단, 평가하기는 아직 이른 감이 있지만 국민의 알 권리 차원에서 심각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참여정부 언론정책의 성패는 국민의 알 권리를 신장시키느냐, 아니면 위축시키느냐에 달려 있다. 왜 그럴까?》

국민의 알 권리란 국민이 원하는 일반정보를 정보원(情報源)으로부터 수집하고 처리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다시 말해 국민들이 알고 싶은 일반정보를 읽고, 보고, 들을 수 있는 권리가 된다. 따라서 알 권리는 개인에게는 공공기관이나 사회단체 등에 대해 정보의 공개를 요구할 수 있는 청구권의 성격을 지니는 동시에 언론기관에는 정보공개를 청구할 수 있는 권리뿐만 아니라 정보수집을 위한 취재의 자유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자유권의 성격도 가지게 된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성격의 알 권리가 보장되어야할 까닭은 무엇일까? 두가지 이유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알 권리는 본질적으로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유지하고 발현하는 데 필수적인 요건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사상 또는 의견을 자유롭게 표명할 수 있을 때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유지하고 자유로운 인격발현을 꾀할 수 있다. 여기서 요구되는 조건은 사상과 의견을 갖기 위해서는 정보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알 권리가 보장되어야만 한다.

둘째, 알 권리는 민주주의 정치제도에서 국민의 주권행사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국민이 어떤 책임있는 정치적 판단을 하고 결정을 내리려면 진실하고 객관적이며 다양한 정보를 알 수 있어야 하고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서로 비교, 검토해 보아야 한다. 이 같은 요청은 민주주의제도의 절차상 핵심인 여론형성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말하자면 알 권리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데 핵심이 되는 가치이기 때문에 보장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알 권리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발현해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또한 국민의 주권행사를 위해 필요한 정보수집권을 의미하므로 대한민국 헌법의 전문과 제1조(국민주권의 권리), 제21조(언론·출판의 자유), 제10조(인간의 존엄성 존중과 행복추구권), 제34조(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등에서 그 헌법적 근거를 찾을 수 있다. 또한 알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우리나라도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시행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1991년에 알 권리를 보장하는 법률이 제정되어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것의 보장은 불가능한 것이 아니고 헌법 제21조에 의해 직접 보장될 수 있는 것이라고 판시한 바 있다.

그러나 알 권리는 헌법에 의해, 또는 정보공개법 등으로 보장되어 있지만 그것의 실현은 일차적으로 정부의 언론정책에 달려 있다. 그것은 알 권리가 기본적으로는 국민이 정부에 대해 일반적 정보공개를 요구할 권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는 본질적으로 알 권리를 사전억제하는 정책을 펴서는 안된다. 오히려 기존의 정보공개법을 보다 자유롭게 국민이 일반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개정하는 작업을 해야 옳다.

끝으로 알 권리와 언론기관과의 관계를 명백히 해 둘 필요가 있다. 먼저 알 권리는 타인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자유가 아니라 개인이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권리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그러므로 언론기관에 주어지는 정보청구권이나 취재의 자유, 취재원 보호권, 보도할 권리 등은 일반 국민의 권리이며 언론기관은 국민의 그 같은 권리의 수탁자라는 인식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알 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해 언론기관에 주어지는 특권들은 일반국민이 누리는 표현의 자유의 한 형식인 동시에 다양한 정보와 의견을 제공함으로써 여론을 형성하는 공적 기능을 다하게 하기 위한 제도적 보장이라는 점을 언론인들은 항상 자각해야한다.

한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외국 언론의 '알 권리' 수호▼

《‘알 권리’는 국민의 기본권에 해당한다. 국가권력으로부터의 언론 독립이 절실한 나라의 경우 알 권리에 대한 침해는 민주주의 그 자체에 대한 위협으로까지 간주되고 있다. 외국의 모범적 언론 상황을 통해 알 권리가 어떻게 수호되고 있는지를 살펴본다.》

◇미국:아프간戰 美軍오폭 취재금지 호된 비판

언론자유의 ‘우등생’인 미국에서 9·11 테러 이후 정부가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려는 사례가 이따금 나타나자 언론단체들이 날카롭게 대응하고 있다.

2001년 아프가니스탄 전쟁 중 미국의 소리(VOA) 라디오방송이 탈레반 지도자 무하마드 오마르와의 인터뷰를 방송하려는 것을 미 국무부가 방해하고 아랍계 알 자지라 TV에 대해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이 ‘편파적’이라고 비난한 것이 그 대표적 사례다. 이에 전국기자노조는 “전쟁과 위기 국면에서는 정부가 언론을 통제하고 싶은 욕구가 더 커지기 때문에 언론자유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된다”면서 “국민의 알권리, 정보접근 권리를 지켜야 한다”고 맞섰다.

미 ABC 방송의 한 인기 시사논평 프로는 ‘테러에 대한 보복이 지혜로운 것인지 의문’이라는 사회자의 발언 때문에 일부 네트워크에서 방송이 금지되기도 했다. 미 정부의 애국주의적 보도 압박에 상당수 방송사들이 굴복했지만 일부 기자들은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취재제한에 항의하는 서명작업을 벌이기도 했다.

미군의 취재제한으로 아프가니스탄전쟁에 관해 정확한 보도를 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여러차례 나왔다. 특히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은 미군의 오폭으로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한 사건에 대해 취재를 막았다가 언론의 호된 비판을 받고 사과하기도 했다.

뉴욕=홍권희특파원 konihong@donga.com

◇일본:“취재원 공개” 의회-재판부 요구 거부

일본 언론계는 최근 의회와 재판부를 상대로 ‘알 권리’를 침해하지 말라고 강력히 요구한 바 있다.

지방의회 의원들이 비리를 폭로한 기사를 쓴 기자를 의회에 출석시켜 취재원을 밝힐 것을 요구하거나 재판부가 뉴스와 프로그램의 녹화테이프를 증거물로 제출할 것을 요구하는 일 등이 잦기 때문이다.

3월 19일 일본 신문협회 산하 편집위원회는 이 같은 일에 관해 “보도의 자유와 알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며 항의 성명을 낸 바 있다. 일본내 153개 신문·방송·통신사가 가입한 일본 언론매체의 대표기관이 ‘언론 자유 수호’ 결의를 다진 것이다.

의회 증언을 요구받는 일에 관해 일본 신문협회는 “취재원 보호는 취재활동의 근간을 이루는 직업윤리이며, 기자가 취재원을 밝히면 취재원과의 신뢰관계가 무너지고 만다”며 부당한 것임을 지적했다. 이같은 일이 생기면 더 이상 취재가 불가능해져 언론 보도의 자유가 제한되고, 나아가 국민의 ‘알 권리’가 침해된다는 것이다.

또 재판부가 방송사를 상대로 비디오테이프를 증거자료로 내라고 요구하는 일에 관해서도 “보도기관은 국민의 신뢰 위에 존재하는 만큼 방송사가 관련기록을 제3자에게 넘기면 신뢰관계가 무너질 수 있다”며 “방송뉴스나 보도 녹화 테이프를 손쉽게 확보할 수 있는 증거로 판단해 함부로 증거로 채택하거나 요구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도쿄=조헌주특파원 hanscho@donga.com

◇프랑스:국익보다 우선… 알제리戰 佛만행 폭로

오늘날 프랑스에서 ‘언론 자유’나 ‘알 권리’ 같은 말을 들을 일은 거의 없다. 그런 단어들이 ‘쓰일 일’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대선 때 프랑스 언론은 유력 후보였던 자크 시라크 대통령과 리오넬 조스팽 당시 총리의 부패와 거짓말 의혹을 속속들이 들춰냈다. 리베라시옹 같은 신문은 “사기꾼(시라크)과 거짓말쟁이(조스팽) 중 누구를 선택해야 하는가”라며 두 후보를 자격 미달로 몰아붙였었다.

그럼에도 이들 후보가 언론을 비난하는 소리는 듣기 어려웠다. 언론을 상대로 싸우는 것 자체가 대선에서 감표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프랑스 언론이 이처럼 마음껏 필봉을 휘두를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나폴레옹 시절에는 과거 한국의 ‘언론기본법’ 같은 악법이 시행되기도 했다. 나치 치하에서 또 한번 암흑기를 겪은 프랑스 언론이 다시 태어나게 된 계기는 1944년 르몽드 지의 창간.

샤를 드골 장군의 주도로 창간된 르몽드는 이듬해 국가에서 주는 100만프랑의 보조금을 돌려주며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했다. 이후에도 드골 정부와 긴장 관계를 유지한 르몽드는 알제리전쟁 때 프랑스가 자행한 고문을 폭로, 국민의 ‘알 권리’를 ‘국익’보다 앞에 놓는 프랑스 언론의 전통을 반석 위에 올려놓았다.

파리=박제균특파원 phark@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