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정권 말기, 행정수도 도면까지 만들었다

  • 입력 2003년 1월 19일 19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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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盧武鉉) 대통령당선자의 핵심공약인 행정수도 이전과 관련, 고 박정희(朴正熙) 대통령 재임기간에 이미 관련 법률을 제정했을 뿐 아니라 부지까지 사들였으며 주요 설계까지 한 것으로 확인됐다.

1977년부터 박 대통령 시해사건이 있었던 1979년까지 진행됐던 행정수도 이전작업의 총 책임자는 당시 오원철(吳源哲) 대통령 제2경제수석비서관. 현재 한국형경제정책연구소 상임고문으로 있는 그는 박 대통령 시절 중화학산업 개발업무를 맡으며 울산 구미 남해 등 수출공단 건설을 주도했던 기술관료다.

오 전 수석은 19일 본보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당시 박 대통령이 국토방위의 이유로 행정수도 이전을 결심하고 이전 준비를 지시해 법을 만들었으며 특정 지역에 반경 10㎞의 부지까지 사들였다”고 밝혔다.

그는 또 “이 지역에 인구 50만명 규모의 행정수도 이전을 계획하면서 대기업 건설사의 엔지니어 200여명에게 설계 용역을 줬으며 최종 보고서를 1979년 박 대통령에게 보고했다”며 “당시 사들였던 땅은 전두환(全斗煥) 대통령 시절에 풀어준(매각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당시 설계에는 대우개발(현 대우건설) 한양주택(현 한양건설) 쌍용건설 두산건설 대림산업 등 6, 7개의 대기업 건설계열사가 참여했다. 부동산 투기 등을 막기 위해 이전 위치는 극소수의 관계자에게만 알려줘 도시설계는 입지를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백지 설계’형태로 진행됐다. 입지가 명시돼 있는 청와대 최종보고서는 수십부만 제작돼 대외비(對外비)로 취급됐으며 현재 오 전 수석 등 일부 핵심 관계자만이 보유하고 있다.

한편 오 전 수석은 위치를 공개하지 않았으나 당시 정부가 부지까지 사들여 이전을 추진했던 지역은 충남 공주시 장기면이었다는 증언이 나왔다.

대우개발의 계열사였던 동우건축의 고문으로 당시 설계에 참여했던 건축가 김종성(金鍾星·현 서울건축 대표)씨는 “도시계획과 핵심 건축물의 건설을 위해 공주시 장기면에 답사까지 다녀왔으며 5층짜리 정부종합청사를 설계해 모형까지 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도시는 중앙의 사각형 구역에 관가와 상업지역이 자리잡고 그 양쪽으로 날개가 달린 새 모양, 또는 리본 같은 형태였다”면서 “도시의 주된 개념은 보행자 위주의 ‘가든 시티(공원도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공주시 장기면은 남쪽으로 금강을 끼고 북쪽으로 장군산을 등지고 있는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의 명당. 공주시 북쪽에 자리잡고 있으며 최근 행정수도 이전으로 이미 땅값이 들썩이고 있다.

당시 도시계획은 행정수도의 중앙 북쪽의 장군산 자락에 청와대가 이전하고 그 정남향으로 정부종합청사, 국회가 일렬로 늘어서는 배치였다. 중앙에는 정부청사와 상업지역을, 양쪽 날개부분에는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었다. 또 오른쪽 날개의 아래쪽에는 금강에 접한 수상 스포츠 시설까지 계획됐다.

또 당시 설계에 참여했던 건축가 강찬석(姜瓚錫)씨는 보유하고 있던 일부 설계도면과 조감도를 본보를 통해 처음 공개했다.

강씨는 “당시 2, 3년간 각계 전문가들이 모여 방대한 연구자료를 만들었으며 앞으로 행정수도를 이전하려면 그 이상으로 깊이 있는 사회적, 문화적 연구가 선행돼야 한다”면서 “시대가 바뀌어 당시 계획을 그대로 쓸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대통령직인수위원회나 새 정부는 자료를 찾아내 참고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중현기자 sanju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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