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비밀 원정수술 되레 병키운다 …매년 100여명 중국행

  • 입력 2002년 12월 23일 18시 42분


콩팥 간 췌장 등의 만성 질환으로 인해 장기(臟器)를 이식받아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환자들이 절차가 까다로운 국내 대신에 중국으로 가 비밀리에 장기이식수술을 받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국내에서보다는 손쉽게 수술을 받을 수 있다는 이점 때문에 비싼 돈을 주고 중국행을 감행하고 있으나 장기 이식 전후의 관리가 제대로 안돼 다른 병에 감염되기도 하고 심지어 목숨까지 잃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태〓23일 본보 취재팀의 확인 결과 서울 S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는 환자 중 6명, 부산 M병원의 환자 4명이 최근 1∼2년 사이에 중국에서 콩팥 췌장 등 장기를 이식받고 돌아왔다. 서울의 또 다른 S병원과 K병원 등 네 곳에도 중국에서 장기를 이식받은 환자가 최소 1명씩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의료계에서는 최근 1, 2년 동안 전국적으로 100명 이상이 중국에서 장기이식수술을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환자들은 브로커나 환자모임을 통해 중국에서의 장기 이식을 알선받고 있으며 비용은 4000만원 정도 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는 브로커에게 속아 수술은 못 받고 돈만 떼이는 경우도 있다는 것.

중국에서 장기를 이식받은 환자 중 일부는 수술 중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등 부작용이 발생하기도 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 S병원의 환자 4명 중 2명은 중국에서 수술을 받은 뒤 현재 치료제가 없는 C형 간염에 감염됐다. 또 부산 M병원의 40대 여성 환자는 최근 중국에서 콩팥이식수술을 받은 뒤 귀국하자마자 패혈증(敗血症)이 악화돼 위독한 상태에 처하기도 했다.

부산 M병원 관계자는 “50대 남성 환자의 경우 중국에서 첫 이식 수술을 받았으나 실패해 재차 수술을 받기도 했다”며 “간혹 중국에서 이식 수술을 받다 숨지는 사람도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왜 중국으로 가나〓대부분의 환자는 국내에서 장기를 이식받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워 살고 싶다는 절박한 심정에서 중국으로 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00년 장기이식법이 발효되면서 뇌사자 판정과 장기 기증 및 수술 절차가 예전보다 대폭 까다로워진 데다 수술 병원이나 뇌사자에 대한 인센티브가 없어지면서 장기이식수술이 격감했다.

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에 따르면 1999년엔 162명이 장기를 기증했지만 2000년엔 64명, 2001년 52명으로 갈수록 기증자가 줄어들고 있다. 이에 반해 장기를 이식받으려는 수술 대기자는 1999년 2000명에서 현재 1만여명으로 늘었다.

장기이식관리센터 관계자는 국내에서의 장기 이식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국내 환자가 중국에서 수술받는 현실에 대해 “그런 사실이 있는지 모르겠으며 대책도 없는 상태”라고 밝혔다.

법적으로 장기 이식을 위한 중국행을 막을 방법도 없는 게 현실이다.

보건복지부는 내년부터 뇌사자가 생긴 병원에 장기 이식 우선 수술권을 주는 등 제도 보완을 통해 수술 건수를 늘리려는 계획이지만 의료계에서는 이것만으로는 역부족이라고 보고 있다.

연세대 의대 이식외과 박기일(朴基一) 교수는 “당국이 현행 장기이식법을 대폭 손질하는 등 장기 기증을 장려하는 획기적인 대책을 내놓지 못하면 중국에서 수술을 받는 환자가 갈수록 늘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성주기자 stein33@donga.com

김상훈기자 core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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