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경기]이곳을 아시나요…인천 청량산 외국인 묘지

  • 입력 2002년 3월 30일 01시 01분


“그대들의 값진 생의 보람은… 숱한 사연을 가슴에 지닌 채 여기 제 2의 고향, 대한민국에 잠드셨으니….”

72년 6월 6일 인천지역사회연합회가 ‘외국인 묘지’(연수구 청학동 산 52의 3)에 묻힌이들을 기리며 비석에 새긴 ‘파란 눈의 영혼에게’란 비문 내용중 일부다.

이곳 묘역에는 1883년 인천 개항 이후 우리나라에 들어와 살면서 나름대로 소임을 다하다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눈을 감은 외교관, 통역관, 선교사, 선원, 의사 등이 잠들어 있다.

인천 연수구 청학동 성호공원을 끼고 물푸레 길을 따라 올라가면 청량산 기슭에 외국인 묘지를 알리는 비석을 만날 수 있다.

3140평에 달하는 외국인 묘지에는 요즘 개나리, 진달래가 활짝 피어 봄의 정취를 한 껏 느낄 수 있다.

외국인 묘지엔 영국 21, 미국 20, 독일 11, 러시아 7, 이탈리아 3, 프랑스 2, 네덜란드·호주 각각 2, 캐나다 인도 중국 각각 1기 등 총 66기의 묘가 있다.

외국인 묘지는 중구 북성동, 율목동과 남구 도화동에 흩어져 있는 외국인 묘를 1965년 5월 25일 한 곳에 모은 것.

당시 인천시는 도심 한복판에 흩어져 있는 외국인 묘가 도시개발에 장애가 되고 미관에도 좋지 않아 이장을 결정했다.

이 묘역에는 성공회 병원에서 인천 시민에게 서양의술을 베풀다 32세란 젊은 나이로 별세한 엘리 바 랜디스(Eli Barr Landis·영국)박사의 묘가 있다. 그는 슈바이처 박사처럼 참의사로서 ‘오지’를 찾아 의술을 펴다 인천에서 생을 마감한 것이다.

외국인 묘지의 유일한 중국인 우리탕(Woo Li Tang, 吳禮堂·오례당)은 청국 외교관 출신으로 인천해관(지금의 세관)에서 일을 하면서 구한말 외교에 많은 공을 세웠던 사람이다. 그는 북성동 현 파라다이스 올림포스 호텔 인근에 자신의 이름을 붙인 ‘吳禮堂’이란 독일식 별장에 살았다. 오례당은 1968년 4월 육군방첩대의 실화(失火)로 불타 버려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 별장은 당시 존스톤 별장(영국계 기업인의 별장)과 함께 인천을 상징하는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로 꼽혔다. 그는 1912년 6월 22일 인천에 묻혔다.

프란시스 셔맨(Francis J Shearman)은 미국 시카고 출생으로 미국 함정 ‘엔터프라이즈’호 승무원으로 인천에 왔다가, 1885년 12월 6일 숨졌다.

65년 당시 묘지 이전에 참여한 최준식씨(64·연수구 청학동)는 “시의 지시에 따라 북성동에 있는 16기의 외국인 묘를 이장했다”며 “외국인들의 관은 우리의 관처럼 직사각형이 아니라 시신이 앉아 있는 모양의 정사각형 관부터 나무관 위에 철판을 다시 덧씌운 형태의 이중 관까지 모양이 사뭇 달랐다”고 말했다.

그는 “일당 6000원을 받고 자유공원 인근에 있는 묘를 이장했는데 무게가 1∼2t에 달하는 석관도 있어 새벽부터 작업을 해도 2∼3기의 묘를 옮기는데 만족해야 했다”고 덧붙였다.

인천지역 교회와 신학교 등에서는 연고가 없는 외국인 묘지에 대해서는 매년 정기적으로 헌화하는 등 ‘살아 인천과 인연을 맺고 인천 땅에서 영면하고 있는 외국인’을 기리고 있다.

차준호기자 run-jun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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