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파공작원 실체 법원서 첫 인정

  • 입력 2002년 3월 22일 18시 07분


북파공작원 훈련을 받다 장애인이 된 퇴역 군인이 국가유공자 인정 판결을 받은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이번 판결은 북파공작원과 특수훈련의 실체를 처음으로 인정한 것이어서 앞으로 유사 소송이 잇따를 전망이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김영태·金永泰 부장판사)는 지난달 7일 김만기씨(49)가 “북파공작원 훈련을 받다 청각장애인이 됐는데도 국가유공자로 인정해주지 않았다”며 의정부보훈지청장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판결했다고 22일 밝혔다.

재판부는 “김씨가 74년 입대 전부터 약간의 청력장애 증세를 보였지만 북파공작원으로 선발돼 훈련을 마친 사실에 비춰 경미한 수준이었다”며 “입대 7개월 만에 더 이상 군복무가 불가능할 정도로 증상이 나빠진 것은 훈련과정에서 지병이 급속히 악화된 결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김씨가 공작임무 수행에 대비해 7개월간 받은 폭발물 조작, 수중침투, 유격 훈련 등은 매우 강도 높은 것이었다”며 “김씨의 장애와 군 복무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인정되므로 국가유공자에 해당한다”고 덧붙였다.

53년 6·25전쟁 휴전 이후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된 72년 7월까지 북파된 공작원은 7726명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 가운데 사망자 300명, 부상자 203명, 북한에서 체포된 사람이 130명, 행방불명자는 4849명에 달한다.

그러나 정부는 지금까지 이들의 보상권은 물론 북파공작원의 존재조차 제대로 인정해 주지 않았다. 이 때문에 북파공작전국연합동지회 회원 250여명은 15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정부의 보상 계약이행 등을 촉구하며 격렬한 시위를 벌인 바 있다.

사건을 맡은 정환영(鄭煥永) 변호사는 “사법부가 북파공작원의 실체를 인정하고 훈련이나 공작 과정에서 부상한 이들이 구제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었다는 데 판결의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정은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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