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서 길러보니]놀이같은 '주제별 학습'

  • 입력 2002년 2월 5일 16시 39분


필자의 딸 반휘윤(8)이 같은 반 아이들과 함께 그린 '호주' 풍경
필자의 딸 반휘윤(8)이 같은 반 아이들과 함께 그린 '호주' 풍경
지난해 서부 호주의 퍼스로 온 후 초등학교에 다니는 우리집 아이들에게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학교 생활을 참 재미있어 한다’는 것이다. 이곳 학교 특유의 ‘주제별 학습’ 때문이다.

주제별 학습은 주제 하나를 정한 뒤 각 과목을 여기에 관련시켜 공부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에너지’라는 주제가 있으면 일단 자연 에너지 등 개념을 짚어보고 과거 큰 전쟁 등에서 에너지가 어떤 역할을 했으며 문학에선 에너지가 어떻게 표현돼왔는지 모든 과목을 통해 이해를 높이는 것이다.

지난해 10월이었다. 딸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자 “내일 학교에서 일본 초밥을 먹게 젓가락과 접시 좀 챙겨주세요”라고 말했다.

아니, 호주에서 웬 김초밥인가? 일단 나는 해달라는 대로 준비해 줬다. 그 다음 날부터 점입가경이었다. 딸이 인터넷으로 고베 지진 자료를 찾아달라는 것이었다. 고베가 어딘지도 모르는 1학년생이, 그것도 지진에 대해서? 아이는 곧 일본 승려가 차를 달여 마시는 과정을 만화처럼 엉성하게 그린 그림을 꺼내 의기양양하게 보여줬다. 자기 팀 작품이라는 것이다.

나는 급기야 딸아이에게 왜 그렇게 갑자기 일본 공부 바람이냐고 물어봤다. 아이는 선생님이 직접 만들어온 김초밥에 ‘겨자 소스’를 듬뿍 묻혀 먹은 아이들이 눈물을 찔끔거린 것, 서툰 젓가락질을 하느라 법석을 떤 것, 며칠 전 팀별로 잉어 모양의 일본 전통 연(鳶)을 만들어 전시한 것, 대형 일본 지도에 그려진 도시마다 종이꽃을 만들어 꽂은 것 등을 재잘거렸다.

며칠 뒤 딸이 등교하며 잊고 간 모자(호주에선 필수)를 갖다주려고 학교에 들른 길에 담임선생님께 넌지시 떠보았다. “지금 무슨 일본 주간 같은 건가요?”

선생님의 대답은 의외로 싱거웠다. “10월 학습 과정에 이웃 나라 알기가 있어요. 마침 내가 대학 때 일본학을 공부해서 일본을 택했어요.” 그러면서 그간 공부한 것들을 보여주었는데 양이 엄청났다. 더하기 빼기를 공부하는 데 쓰인 소품도 소형 일본 부채들이었고 도형 공부에 쓰인 소품도 그가 직접 만든 일본풍의 것들이었다. 그뿐인가. 각종 일본 전통 의상과 공예품들의 밑그림에 색칠하기, 일본식 인사하기, 일본 식생활 습관 익히기, 박물관에서 일본 유물 관찰하기 등 1학년생 수준의 학습을 망라한 느낌이었다.

일본에 대해 따로 배우는 게 아니라 정상수업을 하면서 사례나 도구들을 일본 문화에서 끌어온다는 것이다. ‘일석이조 학습’이었다. 아이들이 재미있어 할 수밖에 없었다.

담임선생님은 “아이들이 벌써 28명이나 돼 주제별 학습에 부적합하다”며 “2학년이 되면 분반(分班)할 예정”이라고 했다. 예산 지원은 충분하다는 설명이었다.

예산 부족, 입시 위주 교육 등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부분 실행할 수밖에 없는 주제별 학습을 아무런 구애 없이 수행하는 환경과 선생님, 아이들의 모습이 그저 싱그럽게 보이기만 할 뿐이다.

김옥자(36·호주 퍼스 거주·초등학교 교사 휴직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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