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례허식 파괴 나부터 앞장을

  • 입력 2002년 2월 3일 18시 34분


《지난달 10일 회갑을 맞은 중소기업체 사장 김정중(金正中·서울 서초구 서초동)씨는 아주 특별한 ‘회갑 잔치’를 했다. 평소보다 일찍 퇴근한 김씨는 부인과 함께 할인점에 들러 50여만원으로 쇠고기 40근(24㎏), 쌀 1가마(80㎏), 귤 3상자를 샀다. 김씨 부부는 곧바로 경기 성남시의 한 양로원을 찾아갔다.》

지난달 10일 회갑을 맞은 중소기업체 사장 김정중(金正中·서울 서초구 서초동)씨는 아주 특별한 ‘회갑 잔치’를 했다.

평소보다 일찍 퇴근한 김씨는 부인과 함께 할인점에 들러 50여만원으로 쇠고기 40근(24㎏), 쌀 1가마(80㎏), 귤 3상자를 샀다. 김씨 부부는 곧바로 경기 성남시의 한 양로원을 찾아갔다.

김씨 부부가 10여 년 전부터 매달 도와온 이 양로원에는 60여명의 버려진 노인들이 살고 있다.

김씨는 “친지들이 모두 잘 먹고 사는데 굳이 돈 들여 잔칫상을 차릴 필요가 있느냐”며 “그 돈으로 외로운 불우이웃을 돕기로 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날 집에서 결혼한 아들과 딸 부부만 불러 저녁식사를 함께 하는 것으로 회갑 잔치를 대신했다.

사회 지도층이 연루된 각종 ‘게이트’와 졸부들의 빗나간 과소비 행태로 사회적 불신감이 높아가고 있는 가운데 일각에서 결혼, 돌, 회갑 등 각종 가정의례의 허례허식을 파괴하는 움직임이 늘고 있다.

국영기업체 고위 간부로 정년퇴직한 박모씨(61·서울 관악구 신림동)도 지난해 자신의 회갑과 올해 손자들의 돌잔치를 하는 대신 경기 광주시의 장애인 복지시설과 서울 동대문구의 교회를 찾아가 옷과 음식 등을 기부했다.

박씨는 “잔치를 열면 초대한 사람은 오히려 돈을 남기고 초대받은 사람들은 부담을 떠안는 등 부작용이 많다”며 “불우이웃을 돕고 기분도 좋으니 이보다 더 좋은 잔치가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있었던 한국방송제작단 이석희(李晳熙·61) 회장 아들의 결혼식도 ‘형식 파괴’로 하객들 사이에서 두고두고 화제가 되고 있다. 신랑과 신부가 손을 맞잡고 입장해 양가 부모 앞에서 결혼서약을 한 뒤 신랑의 아버지인 이 회장이 직접 ‘주례’를 맡은 것.

2000년 회갑 때 잔치를 생략하고 제자들의 논문집 제작 제의도 마다했던 중앙인사위원회 김광웅(金光雄) 위원장은 “회갑을 조용하게 보냈더니 주위에서 아직도 젊게 봐 준다”고 말했다.

생활개혁실천범국민협의회(생개협)가 지난해 11월부터 한 달 동안 전국의 20세 이상 성인 남녀 1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해 최근 발표한 전체 응답자 1498명의 64.4%(964명)가 “가정의례 문화가 더 간소해지고 개성에 따라 다양해질 것”이라고 답해 시민의식의 변화 가능성을 보여줬다.

박제훈 생개협 간사(29)는 “허례허식으로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는 시대는 지나고 오히려 이를 촌스럽고 부끄럽게 여기는 사회적 공감대가 조성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선미기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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