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GO커지는 '자성의 목소리'

  • 입력 2002년 1월 27일 18시 55분


“용기 있는 정직한 목소리를 내지 못한 경우도 있었고, 시민단체 본연의 비판 정신을 상실한 적도 있었다…(중략)…편향을 드러내 사회적 부작용을 초래한 적도 있었음을 인정하고자 한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21일 발표한 ‘경실련 2002년 시민운동 선언’의 한 구절이다. 이 선언문은 회원들이 한달반에 걸친 진지한 토론 끝에 마련했다. 참여연대 환경운동연합과 더불어 시민단체 ‘빅3’로 꼽히는 경실련이 이처럼 자성의 목소리를 낸 이유는 무엇일까.

▼관련기사▼

- "시민공감 없인 안된다" NGO거듭나기 안간힘

경실련은 현 정권 들어 시민단체들이 직간접적으로 참여한 △의약분업 △언론개혁 △16대 총선 낙선 낙천운동을 ‘실패한 시민운동’으로 규정하고 ‘시민이 있는 시민운동’을 위해 거듭나겠다고 밝혔다.

다른 단체들도 공개적으로는 아니지만 내부에서 그동안의 시민운동에 대한 반성의 목소리가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다.

▽자성의 목소리〓여론조사기관인 월드리서치가 지난해 11월 말 성인 남녀 1500명을 대상으로 시민단체 신뢰도를 조사한 결과 ‘매우 신뢰한다’가 5.9%, ‘다소 신뢰한다’가 59%로 나타났다.

시민단체에 대한 신뢰도 자체는 아직 높은 수준이지만 최근 몇년간 계속 떨어지는 추세다. 96년 코리아리서치 조사에서는 12%가 시민단체에 대해 ‘매우 신뢰한다’고 응답했고 ‘다소 신뢰한다’도 62.3%나 됐다.

고계현(高桂鉉) 경실련 정책실장은 “시민단체들이 운동의 당위성만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사회분열을 초래하거나 방법과 절차에서 시민의 합의와 참여를 이끌어내지 못했다”며 “이것이 자기중심적이고 오만한 모습으로 비쳐져 신뢰도가 떨어졌다”고 분석했다.

의약분업 관련 시민운동도 실패 사례로 꼽힌다. ‘함께하는 시민행동’의 하승창(河承昌) 사무처장은 “의약분업 시행 당시 시민단체들은 무조건 ‘의사들이 나쁘다’는 식이었다”며 “대부분의 시민단체가 의대생들의 목소리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아 연대모임에서 탈퇴했다”고 회고했다.

언론사 세무조사에 대해서도 많은 시민단체들이 “방향은 옳았을지 몰라도 방법에는 문제가 있었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시민단체들이 ‘언론 사주(社主)로부터의 독립’을 외치면서도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을 언급하지 않아 정권과 유착됐다는 오해를 사기에 충분했다는 지적이다. 16대 총선의 낙선 낙천운동도 대법원에서 선거법 위반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아 도덕성에 상처를 입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의미있는 변화〓일부 시민단체는 운동 방식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가 있지만 의약분업, 낙선운동, 언론개혁운동 등에서는 나름대로 성과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참여연대 박원순(朴元淳) 사무총장은 “의약분업의 경우 경실련과는 달리 보건연대는 지금도 자신들의 의견이 옳다고 주장한다”며 “시민단체의 연대는 취지에 동감하기 때문에 뭉치는 것이지 ‘패거리주의’와는 차원이 다르다”고 반박했다.

이런 상반된 평가에도 불구하고 전문가들은 시민단체 내에서 다양한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것은 일단 의미가 있다고 평가한다. 올해 지방선거와 대선을 앞두고 경실련 참여연대 환경운동연합 등이 각기 다른 방식의 선거 참여를 표방한 것도 다양한 목소리를 내는 사례로 보고 있다.

또 시민운동의 눈높이를 낮추고 회원 확보를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도 진일보한 발전이라는 평가다. 녹색연합 김타균(金他均) 정책실장은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으면서 내실을 다져야겠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며 “감성적이고 추상적인 운동에서 벗어나 일반 시민의 공감대를 끌어낼 수 있도록 시민에게 다가서는 방안을 적극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훈기자 dreamland@donga.com 민동용기자 mind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