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특집/전문가진단]지원 늘리고 규제 풀어야

  • 입력 2001년 12월 31일 16시 25분


최근 서울대의 연구와 교육 수준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들이 나오고 있다. 세계의 석학들로 구성된 ‘최고자문위원단(Blue-ribbon Panel)’은 최근 서울대가 선진국 대학들보다 10년 내지 20년 뒤져 미국의 중하위 주립대 수준이라고 혹평했다.

학부모와 기업인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는 서울대가 명성에 비해 교육이 부실해 인재를 제대로 길러내지 못한다는 응답이 절반 이상 나온다.

자타가 국내 최고의 대학이라고 인정하는서울대가 왜 이렇게 국제무대에 서면 초라해지고 수요자를 만족시키는 교육을 못하는 것일까.

부끄럽지만 1차적인 책임은 교수들에게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대학 경쟁력의 요체인 연구와 교육은 교수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최고자문위원단의 보고서도 “대학 수준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교수진의 수준”이라며 “서울대 교수들이 위기를 의식하지만 변화를 추구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고 있다”고 뼈아픈 지적을 했다.

사실 서울대는 그 규모로 볼 때 세계적인 수준으로 발전하려면 구조조정이 필요한데도 교수들 스스로 유망 분야를 선정해 집중 지원하자는 논의를 해본 일이 없다. 교수 자신들은 우리 사회의 지나친 평등주의는 비난하면서도, 정작 대학이 능력 있는 학자를 특별 초빙하거나 특별 대우하는 것에는 인색한 게 사실이다. 서울대 교수들이 변화에 소극적인 근본 원인은 국내 대학 간 경쟁이 없기 때문이다. 대학 서열이 고착돼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최고로 인정받는 상황에서 기득권을 포기하며 노력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서울대가 발전하려면 국내 대학 중에서 서울대의 위치를 위협할 만한 대학을 육성하든지, 교육시장을 과감히 개방해 외국대학들과의 경쟁을 유도해야 한다. 국내외의 경쟁을 제한하면 세계 수준의 기관이 탄생하기 어렵다.

그러나 서울대를 세계 수준에서 경쟁시키려면 여기에 합당한 여건을 조성하는 노력도 필수적이다. 정부가 온갖 규제로 대학의 손발을 묶어 놓고 선진국 대학의 10분의 1도 안 되는 투자를 하면서 대등한 성과를 내놓으라는 것은 무리이다.

그동안 대학에 대한 정부의 관심은 입시제도가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부모들도 자녀들의 대학 입학을 위해서만 온갖 정성을 쏟았지 그 이후의 교육에는 무관심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 결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대학 투자는 최하위권이어서 서울대 자문위원단은 “시설이 낙후돼 의미 있는 교육과 연구가 가능할지 의심스러울 정도”라고까지 평했다. 서울대의 연구실적이 선진국 대학보다 떨어진다지만 투자액 대비 논문발표 수는 오히려 많은 편이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 셈이다.

서울대와 교수들도 진지하게 반성해야겠지만 “정부 지원을 받고도 겨우 그 수준이냐”는 일방적 비난보다 저력을 살릴 수 있는 정책도 병행돼야 세계적인 대학으로 거듭날 수 있지 않을까.

<오세정 서울대 교수·물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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