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實외교 망신外交]“책임지는 외교관이 없다”

  • 입력 2001년 11월 4일 19시 13분


외교적 대형사고가 되풀이되는 데는 외교관들의 무사안일주의와 배타적인 ‘선민의식’도 한몫 한다는 분석이 적지 않다. 특히 ‘책임지는 풍토’가 없다는 것이다.

국익을 추구하는 외교 업무는 △국익을 객관화하기 어렵고 △상대국가가 있기 때문에 다른 부처와 달리 그 과실을 따져 책임을 묻기가 어려운 데다 설사 잘못이 있어도 인사권자인 장관만 바뀌면 ‘없었던 일’이 되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올해 초 ‘탄도탄요격미사일(ABM) 제한조약 파문’으로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방미기간 중 곤욕을 치르기까지 했지만 “책임을 느낀다”고 밝힌 당국자는 하나도 없었다. 외교부는 자체 조사까지 벌였지만 그 결과조차 발표하지 않았고, 이 문제로 경질됐던 반기문(潘基文) 차관은 과거 자신이 모셨던 한승수(韓昇洙) 장관이 새로 취임하자 40여일 만에 복직됐다.

정권과장관의입맛에따라달라지는 ‘원칙없는 인사’는 능력으로 인정받기 보다 ‘줄 서기’를 강요하는 구태를 낳아왔다.

한 외무관은 “외교부처럼 특정지역과 특정 명문학교 출신의 ‘좋은 자리 이어받고 챙겨주기’사례가 극심한 부처는 없을 것”이라며 “과거의 ‘청·비·총(청와대, 장관비서실, 총무과) 라인’이 또 다른 형태로 새로운 특권층을 낳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요즘엔 고위외무관의 자식이나 사위들을 중심으로 미국 유엔 등 요직에 근무하는 이른바 ‘왕자클럽’이 생겨나고 있다. 외교부 내에선 이들의 출세가도가 주변의 알력과 질시를 낳는 요인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외교부는 이런 문제점을 감안해 지원자들의 경쟁을 통해 자리를 결정하는 ‘보직공모제’ 및 ‘다면평가제’ 등 새로운 인사제도를 도입했지만 이것이 성공적으로 정착할 것이라고 믿는 외교관은 드물다. 외교부 관계자는 “근본적인 인식과 관행이 바뀌어야지 그럴 듯한 제도 도입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고 말했다.

<부형권·이종훈기자>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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