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의 소송 사례〓경주 김씨 문간공파의 여성 후손인 김모씨 등 10명은 7일 종중을 상대로 종중토지 판매대금 가운데 1억원의 배당금을 달라는 소송을 서울 남부지원에 냈다.
이에 앞서 청송 심씨 종중을 상대로 심모씨(65) 등 여성 후손 3명이 낸 소송과 용인 이씨 사맹공파 여성들이 종중을 상대로 낸 종원 확인소송 항소심 등이 이미 진행중이다. 이들은 올해 초 1심에서 모두 패소하고 현재 항소심에서 힘든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청송 심씨 여성 후손들의 경우 9월에 1인당 합의금 1000만원씩을 받는 조건으로 소송을 취하하도록 한 법원의 강제조정 결정에 불복, 이의신청을 제기해 놓은 상태다. 두 건 모두 재판 준비절차가 진행 중이어서 아직 항소심 재판은 열리지 않았다.
이밖에 성주 이씨 안변공파 여성 후손들이 낸 소송도 있었지만 이들은 1심에서 패소한 뒤 2심에서 1000만원씩을 받는 조건으로 소송을 취하했다.
▽쟁점과 전망〓‘딸들의 소송’은 외형적으로는 재산을 둘러싼 다툼이지만 궁극적으로는 가문의 평등한 후손으로 인정받기 위한 법정싸움으로 볼 수 있다. 즉 여성들이 유교사상에 기반한 남계혈통주의와 ‘출가외인’의 개념에 정면으로 문제제기를 한 것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대법원은 92년과 96년 ‘종중은 공동 선조의 분묘 수호, 제사 등을 목적으로 하는 공동선조의 후손 중 성년 이상의 남자로 구성되는 집단’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하급심 재판부가 대법원 판결을 깬 사례가 거의 없는 데다 후손을 ‘남성’으로 한정시킨 종중 규약을 법원이 무시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따라서 이번 소송 결과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일단 우세한 편이다.
한 남성 판사는 “출가 여성들은 남편이 그 가문에서 종원으로 인정받아 얻게 된 재산을 결국 공유하게 되는 것 아니냐”며 “제사와 묘지관리 등에 의무와 책임을 지지 않는 여성이 재산을 요구하는 것은 납득할 근거가 부족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판결의 변화 가능성〓그러나 최근 여성의 활발한 사회진출과 이를 통한 남녀평등 의식의 확산 등을 고려할 때 사법부의 판단도 바뀔 때가 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서울고법 민사10부(홍성무·洪性戊부장판사)는 8월말 청송 심씨 사건에 대한 조정을 진행하면서 “남성과 여성이 모두 같은 후손인데 남성들의 권리만 주장해서야 되겠느냐”는 취지로 양쪽을 설득한 바 있다.
청송 심씨 사건을 맡고 있는 신호양 변호사는 “법적으로는 승소하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사회분위기도 변했고 당사자들이 헌법소원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는 만큼 끝까지 소송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은기자>light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