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두 어린이-한국 119구조대, 국경넘은 '릴레이 사랑'

  • 입력 2001년 6월 24일 19시 12분


주지인 의은스님(오른쪽)에게 저우군의 시를 적은 액자를 전달하고 있다
주지인 의은스님(오른쪽)에게 저우군의 시를
적은 액자를 전달하고 있다
대만의 두 소년과 한국 119구조대를 중심으로 두 나라를 잇는 감동적인 휴먼스토리가 화제다. 이 이야기에는 생명에 대한 외경심이 깔려있고 비록 나라는 달라도 사람 사이의 따뜻한 정이 흐르고 있다.

‘지금까지 난 누구와도 싸워본 일이 없지만 앞으로 암 악마와 싸울 거예요. 싸워서 건강도 찾고 살아갈 권리도 찾을 거예요. 왜냐하면 난 아직 아홉 살이니까요.’

97년 1월 25일. 대만 수도 타이베이(臺北)에 살던 저우다관(周大觀)군은 생전에 이렇게 다짐했지만 결국 소아 골수암으로 만 9년6개월을 살다 눈을 감았다. 소년 시인이기도 했던 저우군은 여섯 번의 화학치료와 서른 번의 방사선 치료, 두 차례의 대수술을 거쳤고 한쪽 다리를 잘라내는 고통을 겪으면서도 생에 대한 강한 의지와 밝음을 잃지 않는 많은 시를 남겨 대만인들을 감동시켰다.

이 소년의 투병기록과 생전에 남긴 시 42편은 책으로 묶여 대만의 베스트 셀러가 됐다. 부모는 인세수입으로 어린이 암 환자들을 돕는 ‘저우다관 문교기금회’를 만들었다.

그로부터 2년 뒤인 99년 9월 24일. 리히터 규모 7.3∼7.6의 강진이 대만 중부지역을 강타해 수많은 사람이 죽어가고 있었다. 이때 타이중(臺中)현 다리(大里) 왕차오(王朝) 아파트 붕괴현장에서 3박4일 동안 지하에 매몰돼 있다가 구조된 여섯 살배기 장징훙(張景宏)군의 생존 드라마가 대만 전역을 달궜다. 이 소년을 구해낸 사람들은 한국에서 긴급 파견된 119 구조대원 6명. 소년을 안고 나오는 한국 구조대원들에게 대만인들은 ‘한궈(韓國) 한궈’를 외치고 눈물을 흘리며 거수 경례를 했다.

지난달 8일 경기 남양주시 중앙 119구조대 앞으로 한 장의 팩스가 날아왔다. 보낸 측은 ‘저우다관 문교기금회’. 저우군의 책이 어린이날에 맞춰 한국에서 출판(‘내게는 아직 한쪽 다리가 있다’)된 것을 계기로 인세 일부를 한국 119구조대에 기부하기로 했다는 내용이었다.

119구조대는 ‘고맙지만 국가기관이라 받을 수 없으니 우리가 구해낸 대만의 장군에게 전해달라’는 뜻을 밝혔다.

당시 지진으로 부모를 모두 잃고 할아버지와 단둘이 살고있는 장군은 그러나 정중하게 거절했다. ‘목숨을 구해준 한국인들에게 빚을 갚을 길이 없어 막막한데 다시 신세를 질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정히 쓸 곳을 꼽는다면 한국의 어린이를 위해 쓰여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결국 저우군 책의 인세는 한국의 ‘소아암백혈병 어린이 새생명지원센터’에 보내져 한국의 어린이 암환자들을 위해 쓰이게 됐다. 두 소년의 맑은 영혼이 한국 119 구조대원들을 매개로 국교마저 단절된 두 나라를 사랑으로 이은 것이다.

저우군 부모와 대만의 암환자 20여명은 한국의 새생명지원센터에 인세의 20%를 기부한다는 내용의 증서를 전달하고 119구조대원들도 만나기 위해 24일 내한했다.

<허문명기자>angelhuh@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