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법무 사퇴]검찰도 등돌렸다 "조직위한 고육책"

  • 입력 2001년 5월 23일 18시 41분


신승남 검찰총장 내정자(맨 앞)이 법무부 청사를떠나는 안동수 전법무부장관을 배웅하고 있다
신승남 검찰총장 내정자(맨 앞)이 법무부 청사를
떠나는 안동수 전법무부장관을 배웅하고 있다
안동수(安東洙) 전 법무부장관의 '충성문건' 파문 과정에서 나타난 검찰의 대응과 태도는 이전과는 달랐다.

검찰은 '검사 동일체'의 원칙과 '상명하복' 관계가 철저한 조직. 따라서 어떤 경우든 마지막까지 조직의 최고 책임자를 지키려는 보호본능이 강하다.

이번 파문의 초기 단계에서도 법무부와 대검의 간부는 물론 상당수 일선 검사들까지 장관을 위한 해명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사건이 처음 불거진 21일에는 조간신문 마지막판 마감시간인 자정무렵까지 사무실에 머물면서 각 언론사에 보도 자제 를 거듭 부탁했고 22일 오후까지도 이런 분위기가 이어졌다.

그러나 22일 밤으로 접어들면서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감지됐다. 오후 8시 무렵 배달된 23일자 조간신문 가판에 난 관련 기사에 대해서도 의외로 담담한 반응을 보였다. "무리한 기사가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대검의 한 중견 간부는 "이미 선(線)을 넘은 것이 아니냐"고 말했다.

법무부도 비슷한 분위기였다. 한 간부는 가판 기사를 본 뒤 "우리가 더 나서는 것은 국민을 섬기는 공무원의 도리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분위기는 더욱 심각해져 안장관 포기 쪽으로 기울었다. 한 검찰 간부는 "이제 상황은 끝난 것 같다. 우리도 어쩔 수 없다 고 말했다. (안장관이) 스스로 결심하는 수 밖에 없다"는 말도 나왔다.

대검 간부들은 오후 9시 무렵부터 비공식회의를 열어 의견을 나눴고 오후 10시경 한 두 명씩 사무실을 떠났다. 서울지검 간부들도 모두 퇴근했다. 이 때는 이미 '대세'가 결정된 시점이었다는 후문이다. 포기 라는 이름의 검찰 쿠데타 가 절정에 이른 순간이었다.

일부에서는 대통령이 임명한 장관을 끝까지 방어하지 않고 '중도포기'한 것이 사실상 '항명'에 해당하지 않느냐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검사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한 검사는 장관의 해명에 대해 "검사들 스스로 납득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우리가 어떻게 언론과 국민을 납득시키겠느냐"고 말했다. 또 다른 검사는 정확히 말하면 "안장관을 포기 한 것이 아니라 검찰조직과 국민을 선택한 것"이라고 말했다.

검사출신인 한 변호사는 "검찰 조직 전체의 붕괴를 막기 위해 안장관 개인의 안락사 가 불가피했던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많은 법조인들은 이번 사태가 검찰 조직에 중요한 교훈과 변화의 계기를 제공했다고 보고 있다. 무엇이 조직과 나라를 위하는 길이고, 검찰은 누구에 대한 봉사자인지 등에 대해 심각히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것이다.

<이수형기자>so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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