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 유럽서 납북 유학생 이재환씨 북 정치수용소서 사망

  • 입력 2001년 2월 15일 23시 19분


“재환아, 교수가 된다던 네가 어쩌다….”

이영욱(李永旭·69)변호사와 부인 변양자(卞良子·65)씨는 15일 조선적십자회가 대한적십자사에 납북된 큰아들 재환(宰煥·사진)씨가 사망했다고 통보했다는 소식을 듣고 넋을 잃은 듯했다. 재환씨가 송환이 어려우면, 제3국에라도 보내졌으면 하는 게 이변호사 가족의 간절한 소망이었다.

“그동안 정부 부처를 찾아가 아들의 생사라도 알 수 있게 해달라고 하면 ‘통일이 돼야 해결이 가능하다’는 대답만을 들었습니다.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꿈에도 그리던 아들을 만날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오스트리아 빈에서 재환씨가 납북된 것은 87년 7월20일 여름방학을 맞아 유럽배낭여행을 하던 중이었다. 당시 그는 25세로, 미국 동부지역의 명문 MIT 경영대학원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었다.

재환씨 납북 직후 북한 중앙방송은 “의거입북”했다고 주장했으나 북한측은 국제적십자사를 통해 본인의 자유의사를 확인하자는 우리 정부의 요구에 응답을 하지 않았다.

이후 재환씨가 북한에서 결혼해 다국적기업의 횡포에 대한 연구와 강연 활동을 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기도 했으나 국가정보원은 99년 1월 재환씨가 탈북하려다 붙잡혀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변호사는 충격 때문에 88년 민정당 국회의원을 그만두고 변호사 개업을 했다. 그 후 국제사면위원회 유엔고등판무관실 등 국제인권단체에 백방으로 지원을 호소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재환씨의 동생 석환(錫煥·35)씨는 “차가운 수용소에서 형님이 돌아가실 때까지 정부는 과연 뭘 했는지 울분을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전승훈기자>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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