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총련계 재일동포 양석하씨 59년만의 귀향

  • 입력 2000년 9월 20일 19시 03분


59년만에 고향을 찾는 칠순의 아들과 그 아들을 기다려 온 104세 어머니. 일본 도쿄(東京)의 양석하(梁錫河·73)씨와 제주시에 살고 있는 윤희춘(尹喜春)씨가 그 주인공이다.

양씨는 22일부터 27일까지 조총련계 재일동포 고향방문단의 일원으로 한국에 온다. 조총련이 자체적으로 고향방문단을 구성한 것은 이번이 처음. 7월말 남북 장관급회담의 합의에 따른 것이다.

그는 88년 일본에서 47년만에 어머니와 재회한 적이 있었다. 그때 어머니는 “네가 마음 편히 고향을 찾을 날까지 살아야겠다”고 말했으며 어머니는 그 약속을 지킨 것.

어머니 윤씨는 나흘전 아들이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 아기 정말 왐시냐(오느냐)”는 말만 되풀이하다 혼절했다. 그러나 아들을 봐야겠다는 강한 집념 때문인지 차츰 의식을 회복해 이제는 아들 보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윤씨가 이처럼 기다리는 아들 양씨는 초등학교를 마치고 집안일을 거들다 14세 때인 1941년 일본으로 향했다. 광복 후 그대로 눌러앉아 술공장 종업원, 쌀장수 등을 거쳐 65년 비닐제조공장을 설립해 운영해왔다.

양씨의 자녀 5남2녀 중 세 아들과 차녀는 일본에, 두 아들과 맏딸은 평양에 살고 있다. 8월 평양에 갔을 때 자녀들이 할머니에게 보내는 인사를 비디오에 담았다. 23일 어머니를 만날 때 보여줄 계획.

양씨는 “민족문제는 사상 문제와 별도로 생각해야 한다”며 “남북정상회담의 공동선언이 차질없이 실현되도록 모든 사람이 도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어머니 윤씨의 가슴에는 사상 문제에 따른 피맺힌 한(恨)이 맺혀 있다.

둘째 아들은 4·3사건 발발 직전 경찰에 끌려가 고문으로 죽었고 큰아들은 6·25전쟁 직후 제주에 불어닥친 예비검속에 걸려 처형됐다. 둘째 며느리는 4·3사건 당시 군경토벌대에 의해 총살당하고 한살배기 손자는 윤씨의 젖을 빨다가 죽었다.

셋째 석하씨에 이어 다섯째 영하(榮河)씨는 50년대 일본으로 떠났고 넷째 도하(道河)씨는 국방경비대에 자원 입대했다가 탈영한 뒤 인천형무소에서 6·25를 맞아 영영 소식이 끊겼다.

지금까지 윤씨의 곁을 지킨 자식은 6형제 가운데 막내인 덕하(德河·63)씨뿐.

화병으로 숨진 남편과 호적에 오르지 못한 채 세상 빛을 보자마자 하늘나라로 떠난 2남1녀까지 합치면 윤씨는 일가족 7명의 죽음을 봐야 했고 아들 3명과는 소식이 끊기는 아픔을 견뎌야 했다.

이런 비통함을 증명하듯 목덜미에 애기 주먹만한 멍울이 생겨난 윤씨는 20일 겨우 알아들을 수 있는 소리로 “혼저 왕 봐시민…(빨리 와서 봤으면…)”이란 말만 되풀이하다 다시 의식을 잃었다.

<도쿄〓심규선특파원·제주〓임재영기자>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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