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의 경제 심포지엄]'빈익빈 부익부'해소 민간도 나서자

  • 입력 2000년 5월 30일 19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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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경제 시대에 효율과 형평은 영원히 함께 잡을 수 없는 두 마리 토끼인가.

동아일보사와 삼성경제연구소는 30일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실에서 외환위기 극복과정에서 심화된 부익부 빈익빈 현상 등 사회적 불균형 해소 등을 위해 ‘나눔의 경제’라는 주제의 심포지엄을 공동 개최했다.

이날 심포지엄에서 참석자들은 “디지털 시대에는 이미 발생한 경제적 격차를 줄이려는 사후적 노력뿐만 아니라 사회적 불균형을 유발하지 않으면서 경제 발전을 이룰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의견을 모았다.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진과 학계 종교계 인사들이 발표자로 나선 이번 심포지엄에서는 분배문제를 정부에만 의존해서는 안된다고 보고 △민간과 기업의 역할 △비제도적이고 자발적인 나눔을 중심으로 논의를 진행했다.

윤병철 하나은행 회장은 인사말에서 “경쟁은 승패가 존재하게 마련이므로 ‘사회적 형평’과 ‘경쟁을 통한 효율’의 상충관계는 풀기 어려운 숙제”라며 “나눔의 경제는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하나의 대안이자 사회 전체적으로 가장 소중한 투자”라고 말했다.다음은 이날 심포지엄 주제발표 내용 요지.》

▽나눔의 의미와 과제-기조발제(정문건 삼성경제연구소 상무)〓‘나눔’은 디지털 경제구조 아래서 부(富)의 분배-재분배 상태와 이에 관련된 제도를 개선하고자 하는 경제주체들의 행위다.

전통적인 경제에서는 노동·원료 등 요소 투입량의 차이에 의해서 경제적 격차가 발생했지만 디지털 경제에서는 ‘정보’의 차이가 소득 격차를 급격히 증대시켜 부의 양극화를 가져온다. 따라서 소득 양극화-상대적 박탈감 증대-사회경제불안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극복하고 디지털 경제의 선순환을 이루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나눔’을 사고해야 한다.

▽분배구조의 현황과 문제점(최숙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정부 정책의 문제점으로 역진적인 조세구조와 미미한 사회보장 및 복지지출 등을 들수 있다. 소득이 많을수록 세율이 높은 누진구조가 바람직함에도 소득세 등 직접세의 비중이 낮아 조세정책이 제기능을 못한다. 사회보장 및 복지분야에 대한 정부 지출도 미국 등 선진국의 3분의 1 수준이다.

민간차원에서도 선진국에 비해 기부문화풍토가 취약하다. 한 설문조사 결과 개인이 기부금을 내지 않는 이유로 든 것 중 경제적 여유 부족과 운영기관에 대한 신뢰부족이 78.8%나 차지했다. 따라서 기부에 대한 세제상의 유인책과 기금운영의 투명성 제고를 위한 장치들이 필요하다.

▽기업의 사회적 공헌(이상민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개념은 경제발전 초기였던 80년대까지만 해도 양질의 제품을 저렴한 가격에 생산하는 역할만을 의미했다. 그러나 현재는 수요자와 사회의 요구에 적극적으로 부응하는 ‘기업시민’(corporate citizenship)정신으로 의미가 확대됐다.

아직까지 우리나라의 기업 자선은 부정적 여론을 무마하고자 마지못해 하는 ‘준조세적 자선’이거나 기업 소유주의 과시적인 자선이 대부분이어서 자발성 지속성 전문성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기업 나눔의 활성화를 위한 4대 과제로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을 창출하는 사회적 투자로의 인식 전환 △특화된 영역에 초점을 맞추는 등 경영과 접목한 전략적 기부 △인센티브 제공 등 기부의 제도적 인프라 구축 △비정부 기구 NGO나 지자체와 파트너십을 맺는 등 ‘나눔의 네트워크’ 결성이 필요하다.

▽기업의 사회공헌사례(송경용 성공회 신부·‘아이들과 미래’ 상임이사)〓무한팽창과 독점으로 흐르기 쉬운 기업문화를 극복하고 부의 축적과 사회적 나눔을 동시에 수행하자는 것이 올해 2월 인터넷 벤처기업 25개사가 약 100억원을 출연해 만든 연합 사회복지재단 ‘아이들과 미래’의 설립취지다. 재단사업의 가장 중요한 원칙은 사회복지의 사각지대에 있는 단체나 개인에게 우선적으로 지원하고 지원대상의 판단은 수요자 입장에서 한다.

산업화 시대의 논리였던 ‘파이론’은 소수특권층과 다수 희생자의 존재를 정당화하는 것으로 다원화된 쌍방향 소통의 시대인 디지털 사회에는 맞지 않는다. ‘파이론’은 중심이 절대권력 한곳에 집중돼 있어 뿌리는 것도, 배분하는 것도 절대권력의 의사에 달려 있다.

디지털시대의 논리는 함께 뿌려지고 함께 성장하는 ‘씨앗론’이 돼야 한다.” 경제인들이 자신을 ‘씨앗들을 관리하는 지배인’이 아니라 스스로 ‘하나의 씨앗’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기부와 자원봉사,그리고 연(緣)복지(홍경준 전북대 교수)〓혈연, 지연, 학연 등 연줄망을 매개로 사회구성원의 복지욕구가 다루어지는 연복지를 새롭게 재구성해야 한다. 노인이나 환자의 부양을 대가족공동체에서 담당했던 전통적인 가족구성도 연복지의 한 예다.

연복지는 ‘한물 간 과거의 유물’처럼 보이지만 긍정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연줄망은 정서적 지지, 의사소통의 경로, 사회적 자원의 유통 등의 기능을 하며 연복지의 논리는 선물 주고받기와 같이 호혜적인 나눔의 논리라고 할 수 있다.

다만 한국의 연줄망은 비공식적이고 폐쇄적이어서 시간과 물적 자원의 나눔을 어렵게 하는 경향이 있다. 풍부한 자원을 가진 연줄망에서 배제된 사회적 약자는 경제적 인적 사회적 자본 모두에 접근이 어려워지는 문제가 있다. 따라서 연줄망의 부정적 측면을 최소화하고 연줄망의 개방성을 확보하는 전략이 중요해진다.

이를 위해 ‘네트 레이징 (net raising)’의 개념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자금의 수요와 공급을 연결하는 펀드 레이징 (f-und raising)처럼 기존의 풍부한 연줄망과 그로부터 배제된 사회 성원을 짝짓는 작업이 필요하다. 닫힌 연줄망의 변화를 위해 중개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사회사업가 양성이 시급하다.

▽나눔의 활성화(정홍원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나눔의 활성화를 위한 분야별 개선과제를 마련해야 한다.

조세-재정의 측면에서는 소득파악의 정확성 확보, 세율의 탄력적 조정, 복지예산의 지속적 확충 등 조세 재정 정책의 재분배 기능 강화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또 사회복지의 측면에서 수요자중심의 행정체계를 갖춰 비효율적이고 비체계적인 현행의 체제를 개선해야 한다. 최근 4대보험 통합이 논의되듯이 사회보험은 관리운영체계를 연계해 비효율을 없애고 소득파악 및 부과기준의 일관성을 도모해야 한다.

기업은 지역사회와의 네트워크 구축, 시민사회는 투명성과 전문성 제고, 개인은 자발성과 지속성의 유지 등에 힘을 쏟아야 한다. 결국 나눔의 활성화는 법적 제도적 기반 위에서 정부 기업 시민사회 모두 사회통합과 새로운 공동체 형성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며 한시적으로 도움을 주는 소극적 복지보다 일과 복지가 연계되는 ‘생산적 복지’를 추구해야 한다.

<김승진기자> sarafi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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