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전국투표 표정]상주…국군포로…미전향장기수…

  • 입력 2000년 4월 13일 19시 42분


16대 총선 투표일인 13일 전국의 투표소에서는 아침 일찍부터 유권자들의 주권행사 행렬이 이어졌다.

▼서울▼

○…박순용(朴舜用)검찰총장 등 검찰수뇌부와 공안팀들은 13일 전원 출근해 일선 지검 지청으로부터 전국의 투표 상황을 보고받는 등 만일의 사태에 대비.

박총장은 “선거사범 숫자가 크게 늘었지만 여야(與野) 가리지 않고 형평에 어긋나지 않게 원칙에 따라 처리한다는 게 검찰의 기본방침”이라며 “엄정한 잣대를 적용해 향후 선거사범 처리를 둘러싸고 잡음이 나오지 않도록 만전을 기하라”고 공안팀에 지시.

○…선거인명부에 등재된 유권자 총 1943명 중 30% 가량인 570여명이 수녀인 서울 중구 명동 제1투표소에는 오전부터 명동성당과 수녀원에 있는 수녀들의 발걸음이 줄을 이으면서일반인보다 훨씬 높은 투표율을 기록. 지방에서 사목 활동 중인 수녀들까지 전날 밤 대부분 상경했으며 김수환(金壽煥)추기경과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정진석(鄭鎭奭)대주교도 이날 오전 9시50분경 투표소를 찾아 수녀들과 함께 투표.

○…많은 투표소가 2층에 설치돼 투표를 하러 온 장애인이나 몸이 불편한 노인들이 계단을 오르내리는데 곤란을 겪는 등 불편을 호소. 13일 오전 8시반경 서울 동작구 상도1투표소에서 투표를 마친 김상록씨(80)는 “관절염으로 무릎이 아픈데 매번 동사무소 2층에 투표소가 마련돼 계단을 오르내리기가 너무 힘들다”며 괴로운 표정.

중앙선관위에 따르면 전국 1만3780개 투표소 중에 지하나 2층 이상에 설치된 투표소는 모두 2332곳으로 16.9%이며 이 가운데 3층 이상도 84개소. 이는 그나마 지난 15대 총선 때의 18.7%보다는 조금 나아진 수치. 선관위측은 “1층에 투표소를 설치하려고 노력해도 장소가 마땅치 않다”며 “불편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아 최선을 다해 1층을 찾았고 2층 이상인 곳은 도우미를 배치했다”고 설명.

▼경기 인천▼

○…경기 광주군 퇴촌면 ‘나눔의 집’에서 살고 있는 일본군 위안부 출신 할머니 8명도 투표에 참여.

특히 지난해 5월 중국에서 살다가 64년 만에 고국에 돌아와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은 문명근할머니(84)는 “나도 이제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투표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이 생겨 무척 기쁘다”며 고국에서의 첫 주권 행사에 만족.

○…인천 남구 용현5동 용현중학교에 마련된 제5투표구에서는 이날 오전 10시 장애인 박형배씨(81)가 선거인 명부에 도장으로 날인하겠다고 주장하며 서명을 요구하는 선관위 직원과 30여분간 실랑이를 벌이다 투표를 포기.

박씨는 “1947년 피란온 뒤 선거 때마다 도장을 사용했는데 갑자기 도장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선관위 직원이 도장 날인을 계속 거부해 화가 치밀어 투표를 포기했다”고 설명.

선관위 관계자는 “이미 96년 15대 총선 때부터 도장을 찍는 대신 서명을 하거나 무인을 찍도록 했지만 아직 홍보가 부족한 것 같다”며 “오전 11시부터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도장을 사용해도 좋다는 지침이 내려와 도장으로 날인하는 것을 허용했다”고 밝혔다.

▼대전 충청▼

○…공식선거운동이 12일 자정으로 끝났지만 13일 투표소 입구에 후보자의 포스터가 붙은 유세차량을 세워놓거나 선거사무원들이 특정 후보를 연상시키는 통일된 복장으로 투표소 주변에 서 있는 등 간접 선거운동은 계속.

대전 서을의 A후보는 갈마1투표소 앞에 유세차량을 세워 놓았다가 유권자들의 힐난이 이어지자 스스로 철수. 유성구선관위는 “투표소 부근에 후보들의 선거운동원들이 투표소로 들어서는 유권자에게 악수를 청하는 등의 방식으로 선거운동을 벌인다는 신고가 이어져 즉시 중단하도록 지시했다”고 설명.

○…시각장애인 특수학교인 충북 청주 맹학교 학생 10여명은 청주시 일신여고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투표했는데 이들은 이날 오전 9시경 맹학교 교사의 도움을 받아 학교에서 200m가량 떨어진 투표소로 걸어가 투표. 학교측은 학생들의 실수를 막기 위해 투표 전에 2차례에 걸쳐 기표연습을 하도록 했으며 후보자 선택에 도움을 주기 위해 후보자 약력과 공약 등을 학생들에게 읽어 주기도.

○…충북 청주 서부 모범운전자회(회장 박광래·朴光來)는 거동이 불편한 노인과 장애인들을 시내 각 투표소까지 무료로 태워주는 자원봉사를 실시. 개인택시 운전사 300여명으로 구성된 이 운전자회는 지역 방송사에 자막광고를 낸 뒤 수송요청이 올 경우 무료로 투표자들을 태워주었으며 이날 모두 10여명의 노인이 이같은 무료 택시를 이용.

▼대구 경북▼

○…대구 달성군 옥포면 반송리 석준기씨(58)는 모친상 중인데도 일가족 6명과 함께 오전 7시 20분경 반송초등학교 제2투표소에서 상복을 입은 채로 귀중한 ‘한표’를 행사한 뒤 곧바로 장지로 출발.

○…경북도는 12일 오후 산불이 번진 울진군 북면 나곡리 등 일부 지역 주민들이 주민등록증 등 신분증을 챙기지 못한 채 긴급 대피하는 바람에 신분을 확인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면사무소에서 복사해 주는 주민등록표를 제시하면 투표를 할 수 있도록 조치.

○…13일 오전 8시반경 경북 칠곡군 북삼면 송산초등학교에 마련된 제1투표소에 손자 2명의 부축을 받아 투표하러 간 김향이할머니(86)가 투표소 내 참관인용 의자에 앉아 쉬던 중 갑자기 쓰러져 병원으로 옮겼으나 사망.

▼부산 경남▼

○…박재규(朴在圭)통일부장관은 남북정상회담 준비로 바쁜 일정을 보내는 가운데서도 오전 9시경 경남 마산시 합포구 문화동 투표소에서 투표. 박장관은 투표를 마친 뒤 남북정상회담 일정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구체적인 남북간 실무 접촉은 김일성의 생일을 기념하는 태양절 주간(4월9∼17일) 이후에나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

○…부산 수영의 민국당 신종관(辛宗官)후보는 선거하는 해와 같은 띠인 용띠 아가씨가 첫 투표를 하면 자신이 당선된다면서 운동원 자녀 중 25세 미혼여성 3명을 뽑아 각기 다른 투표소에서 투표하도록 조치. 신후보측은 또 5세 남자 어린이를 어머니가 업고 투표하도록 하면 당선된다는 또 다른 속설에 따라 당원들을 수소문해 모두 40여명의 해당자에게 투표를 부탁.

○…부산 해운대구 재송1동 새마을지도자협의회장인 손돌석씨(51)는 11일 교통사고로 숨진 부인(47)의 출상을 3시간 앞두고 13일 오전 6시 재송1동사무소 투표소에 상복을 입은 채 투표. 98년 4월 북한을 탈출해 고향인 경남 함양에서 살고 있는 국군포로 양순용씨(74)가 13일 오전 8시 40분경 수동면 화산리 수동면사무소에 설치된 투표소에서 부인과 함께 귀중한 한표를 행사. 양씨는 “수십년 만에 투표용지를 보니 온몸이 떨리고 감개무량하다”고 감회를 피력.

▼광주-전남북▼

○…광주 북구 두암2동 ‘통일의 집’에 살고 있는 미전향 장기수 4명 가운데 이공순씨(56)와 이재용씨(55)가 이날 오전 인근 청운어린이집에 마련된 제2투표소에서 출소 후 첫 투표권을 행사.

지난해 대통령 특사로 풀려난 이공순씨는 “남북한이 6월에 정상회담을 열기로 해 이번 선거는 남다른 의미를 갖는 것 같다”며 “죽기 전에 통일된 조국에서 주민의 대표를 뽑는 진정한 선거를 한번 해보고 싶다”고 한마디. 함께 통일의 집에 거주하는 이경찬씨(65) 등 2명은 본인들이 주민등록증 갖기를 거부해 현재 투표권이 없는 상태.

○…광주 광산구 하남동 영일식품은 회사 휴게실에 설치된 광산 제1투표소에서 투표가 시작된 오전 6시부터 직원 3명을 투표소 입구에 배치해 노약자와 장애인들에게 투표요령 등을 알려주고 기표소까지 안내해 주는 한편 아침식사를 거른 유권자와 선관위원들에게 빵과 우유를 제공.

○…광주 광산구선관위는 13일 이례적으로 관내 각 투표소에 민주당 전갑길(全甲吉)후보의 허위경력사항을 알리는 벽보를 부착. 광산구선관위는 무소속 나병식(羅炳湜)후보가 ‘전후보의 선전벽보와 선거공보 등에 기재된 교수재직 경력이 잘못됐다’며 제기한 이의를 받아들여 “민주당 전후보는 동신대 겸임교수로 99년 3월 1일부터 2000년 2월 28일까지 재직했으나 현재는 재직하지 않고 있다”는 내용의 벽보 1장씩을 각 투표소 입구에 부착.

○…전남지역에서는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 투표에 참가한 유권자들에게 음식값을 할인해주는 등 각종 행사가 마련됐는데 목포시 하당동 원조이동갈비집 주인 김석지씨(46)는 13일 “투표하고 오는 손님에게 냉면값의 40%를 할인해주겠다”고 이색광고.

○…신안군 압해면 우간도 주민 53명은 13일 오전 9시경 전남지역에서는 처음으로 주민 모두가 투표를 완료. 주민 58명 가운데 유권자가 53명인 우간도 주민들은 오전 8시반경 마을 이장 소유의 1t급 소형어선을 타고 뱃길로 10분 거리에 있는 압해도 쌍룡분교 투표소에 도착해 투표를 완료.

○…도 행정에 대한 불만 때문에 주민등록증을 반납했던 전북 정읍의 섬진강 댐 주변 주민들이 대부분 주민증을 돌려 받고 투표에 참여. 정읍시 산내면 등 섬진강 댐 주변 지역 주민 750여명은 7일 상수원 보호지역으로 지정된 주거 지역에 대해 적절한 보상을 요구하며 도청에 주민증을 반납하고 투표 거부의사를 밝혔었는데 13일 행정 당국의 설득으로 이중 600여명이 주민증을 돌려받고 투표.

▼강원-제주▼

○…강원 춘천시 소양동 투표소 입구에는 한국자유총연맹이 내건 ‘남북정상회담 개최 환영’이라는 현수막이 내걸려 민국당측이 “투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며 선관위에 철거를 요청. 선관위 관계자들은 한국자유총연맹이 투표소가 있는 건물에 입주해 현수막이 걸렸고 현수막 위치도 입구보다는 출구 쪽이라며 난색을 표시.

민국당측은 “선거운동기간에 잠잠하던 관변단체가 투표 당일 이같은 현수막을 내걸 줄 미처 몰랐다”며 “마지막 날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라며 거세게 항의.

○…9일 조부상을 당한 장준혁씨(24) 등 일가족 15명은 13일 오전 6시반경 장지로 출발하기에 앞서 제주 북제주군 애월읍 곽금초등학교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상복을 입은 채 귀중한 주권을 행사. 장씨 조부인 장동숙씨(91)는 노환으로 숨지기 하루 전인 8일 부재자 투표로 생애 마지막 한표를 우편으로 보내 주위를 숙연했다는 것.

<총선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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