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문건파문]진술 토대로 본 사건전말

  • 입력 1999년 10월 29일 20시 54분


한나라당 정형근(鄭亨根)의원이 공개한 ‘언론대책문건’의 작성자와 제보자가 밝혀짐에 따라 이번 사건 실체 중 중요한 부분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관련 당사자들이 문건 작성 및 제보 경위 등에 대해 여전히 상반된 진술을 하고 있으나 확실시되는 진술을 중심으로 사건을 재구성해본다.

▼문건작성 ▼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만을 토대로 하면 발단은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연수 중인 중앙일보 문일현(文日鉉)기자가 6월20일경 평소 잘 아는 이종찬국민회의부총재에게 안부전화를 걸면서 시작됐다.

문기자는 며칠 뒤인 24일 팩스를 통해 이부총재의 서울 여의도 사무실로 문제의 문건(사신 3장과 언론대책 7장)을 보냈다.

▼문건전달 ▼

평화방송 이도준(李到俊)기자는 6월말경 취재차 이부총재의 사무실에 들렀다. 이기자는 신원철비서관의 책상에 앉아 서류를 들춰보다 문제의 문건을 발견해 몰래 복사해 가지고 나왔다.

이기자가 복사한 문건은 문건 중 언론대책 부분 7장. 당시 이부총재의 사무실은 새로 개설될 때라 짐정리로 어수선한 상태였다.

이기자는 문제의 문건이 얼마전까지 이부총재가 원장으로 재직했던 국가정보원에서 작성한 것으로 추정하고 회사 간부들과 보도여부를 상의했다. 그러나 회사측은 “신빙성이 약하다”며 보도하지 않았다.

이기자는 이어 동료기자들에게 문건입수 사실을 알렸으며 9월초 국회 의원회관으로 평소 잘아는 정형근의원을 찾아가 문제의 문건을 보여주었고 정의원이 문건의 복사를 요청하자 허락했다.

정의원은 그 뒤 주변 인사에게 문건의 주요 대목을 보여주며 “여권의 언론장악음모가 진행되고 있다. 여권의 비선조직이 만든 것으로 누가 만든 것인지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문건에 제작 일자가 없고 형식도 엉성하다’는 주변 인사의 지적에 “원래 비선조직이 만드는 문건은 형식이 없다”며 대수롭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

▼문건폭로▼

정의원은 25일 국회 본회의 대정부질문을 통해 문제의 문건을 공개하면서 “이강래(李康來)전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이 작성했고 여권 실세를 통해 청와대에 보고했다”고 주장했다. 정의원은 문건 공개 전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에게 대략적인 보고를 했다.

문건 폭로 후 이종찬부총재측은 26일 베이징에 있는 문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문건작성자가 문기자임을 확인한 뒤 이를 국민회의에 알렸다. 국민회의는 27일 문건 작성자가 문기자라고 공개했고 문기자도 이를 시인했다.

이어 정의원은 제보자로 이부총재의 측근을 지목했고 이부총재측은 이기자에게 문건을 훔쳐간 혐의를 두고 내사를 벌였다. 문건 제보사실을 부인했던 이기자는 28일 오후 이회창총재를 찾아가문건제보사실을 밝히면서 “정의원이 지나치게 앞서가는데 자제시켜달라”고 요청했다.

이어 이총재는 정의원을 불러 경위를 물어봤고 정의원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며 안심시켰다. 이에 따라 한나라당은 본회의장 농성에 들어가는 등 강경대응을 택했고 이기자는 이부총재측과 다시 만나 제보사실을 털어놨다. 사정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한나라당은 이총재 주재의 심야회의를 거쳐 제보자를 전격 공개했다. 그 시간에 이기자는 여의도에서 이부총재측을 만나고 있었다.

〈양기대기자〉k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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