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한국 1패]『이럴수가』4천만 허탈

  • 입력 1998년 6월 14일 09시 34분


경기종료를 알리는 심판의 호각소리가 울려 퍼지는 순간 밤잠을 잊어가며 ‘월드컵 첫승’의 낭보를 학수고대하던 국민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시민들은 우리 선수들이 패배의 아픔을 하루 빨리 잊어버리고 네덜란드 벨기에전에서 ‘기적의 승리’를 거둬 16강의 염원이 이뤄지기를 포기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이날 새벽 서울역과 강남 고속버스터미널 등에는 승객과 시민 수백여명이 TV를 지켜보다 환호와 탄식을 번갈아 터뜨렸다.

전반전 하석주의 첫골이 터지자 일제히 일어나 옆사람을 부둥켜 안고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는 등 열광의 도가니를 연출하던 시민들은 후반 동점골과 역전골을 잇따라 허용하자 일제히 안타까운 한숨을 내쉬었다.

선제골의 감격이 채가시기도 전에 하석주가 퇴장당하는 것을 안타까운 시선으로 지켜보던 국민은 이후 더욱 큰 성원을 프랑스 현지 경기장에 실어 보냄으로써 하석주의 빈자리를 국민 모두가 한마음으로 메우는 모습.

○…아파트단지가 밀집한 강남일대는 집집마다 박수소리와 탄성이 쏟아져 나왔으나 멕시코의 결승골이 골네트를 가르는 순간, ‘아’하는 절망의 탄식이 터져나왔다.

심판의 경기종료 휘슬과 함께 많은 가구들은 패배의 충격을 잊기 위해 곧바로 잠자리에 들었지만 쉽사리 잠에 빠져들지 못했다.

○…광화문 동아일보 사옥에 설치된 전광판을 통해 생중계되는 경기를 지켜보던 시민들도 도심의 여름밤을 한껏 달구었던 응원의 열기가 한국팀의 패배로 순식간에 식어버린듯 경기종료와 함께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주말을 이용, 경기 용인 에버랜드 잔디밭에 모여 대형 멀티비전을 통해 축구경기를 관전하며 응원전을 펼쳤던 사람들은 아쉬움을 달래지 못해 귀가를 서두르거나 공원안팎에서 씁쓸한 술파티를 벌였다.

○…대형스크린을 통해 심야영화와 함께 한국 대 멕시코전을 상영한 대한 허리우드 씨네맥스 등 심야상영 영화관을 찾았던 시민들은 “가장 고통스럽고 긴 영화였다”며 불편한 심기를 노출.

친구들과 대한극장을 찾은 이현수(李炫秀·20·연세대2년)씨는 “역시 월드컵 첫승의 벽은 높았다”면서도 “하지만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이 많은 사람들을 한마음 한뜻으로 모을 수 있다는 것이 축구의 힘 아니냐”며 애써 자위.

○…한국팀의 16강진출을 기원하며 손님들과 함께 8개월간 종이학 1만6천마리를 접은 연세대앞 카페 블루의 주인 이광필(李光弼·36)씨는 “부상으로 결장한 황선홍 선수의 공백이 너무 컸던 것 같다”고 패인을 분석하기도.

〈권재현기자〉confetti@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