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도위기 몰린 중소기업인들, 「八起會」 구성

  • 입력 1997년 12월 13일 20시 42분


『공장 전기가 끊기고 마지막 남은 직원들마저 뿔뿔이 떠난 뒤 죽을 생각으로 공장으로 갔지요. 차가운 사무실 바닥에 누워 뒤척이다 깨어보니 머리맡에 다섯살배기 딸이 「아빠 힘내세요」라고 쓴 쪽지가 붙어 있는 거예요. 아직 한글도 제대로 모르는 딸아이가…. 차마 죽을 수 없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시작했습니다』 부도위기에 처한 중소기업인들의 모임인 팔기회(八起會). 92년 부도를 냈거나 부도위기에 처한 중소기업인 학자 변호사 등 3백여명으로 결성된 팔기회는 경제불황으로 5년새 회원이 1천여명으로 늘어났다. 최근 불황으로 부도업체가 급증하면서 몇달새 회원이 2백여명이나 늘어났다. 회원이 늘어나는 것이 결코 즐거울 리 없는 팔기회에는 요즘 하루 평균 7,8명의 기업인이 찾아와 조언을 구하고 있다. 벼랑 끝에 몰린 사람들의 문의 전화도 끊이지 않는다. 매출액 30억원 규모의 모터펌프 생산업체인 거성기업㈜을 운영하다가 92년 부도를 내고 현재 택시운전을 하면서 재기를 위해 뛰고 있는 권혁중(權赫重·41)씨. 가죽제품 생산업체를 운영하다가 90년 부도를 낸 뒤 최근 다시 사업을 시작한 범아상사 이주범(李柱範·50)사장. 84년 부도를 냈으나 종업원과 일치단결해 회사를 다시 살려낸 뒤 92년 팔기회의 창립멤버로 참여한 ㈜나전모방 남재우(南在佑·57)사장. 어느날 찾아온 절망 속에서 결코 좌절하지 않았던 「부도선배 기업인」들은 자신들의 고통과 시련을 소개하면서 실의에 빠진 회원들을 격려했다. 『죽을 결심이면 차라리 막노동판에서 등짐을 질 생각으로 다시 뛰어라』 남사장은 집과 공장 모두가 경매에 넘겨져 자신의 운전기사 집에 얹혀 생활하던 때를 회상했다. 『나 때문에 피해를 본 사람들에게 언젠가는 반드시 빚을 갚겠다는 일념으로 살았습니다. 회사가 어려워지니까 종업원들이 공휴일은 물론 점심시간에도 순번을 정해 식사를 하면서 일을 하더군요. 결국 몇년만에 공장을 다시 찾을 수 있었지요』 서로의 쓰라린 경험과 재기담을 나누며 서로를 위로하는 팔기회 회원들은 『7전8기가 안되면 8전9기, 9전10기라도 해서 반드시 일어서고야 말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이 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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