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프로 경품에 성난 시민들 『해외여행 타령이라니…』

  • 입력 1997년 11월 23일 19시 53분


정부가 21일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요청한 후 신문사에는 많은 시민이 전화를 걸어와 울분을 토하고 있다. 『자주경제의 죽음을 정부가 선언한 국치일(國恥日)인데 반기(半旗)를 달아도 실정법에 위반되지 않느냐』는 극도로 자조적인 기분의 표현부터 『국민이 외화 사용을 자제하도록 캠페인을 벌여달라』는 주문까지 다양하다. 서울 관악구에 사는 김모씨(35)는 23일 오전 『TV를 보다가 화가 나서 전화를 걸게 됐다』며 오락프로그램의 무분별한 경품 남발에 대해 분노를 터뜨렸다. 『뉴스에서는 한국이 3류 국가로 전락했다며 이같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선 국민도 함께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렇지만 오락프로그램으로 채널을 돌리면 방송사들이 앞다투어 「유럽 몇박」 등 해외여행권을 경품으로 내놓고 호들갑을 떠니 이런 표리부동이 어디에 있습니까』 김씨는 또 『언제부터인가 해외풍물을 소개하는 프로그램도 우후죽순처럼 늘었는데 이같은 프로그램의 대부분은 오락물』이라고 말했다. 해외여행을 경품으로 제공하는 것은 방송사뿐만이 아니다. 복권의 보너스경품으로도 하와이여행권이 등장하고 있으며 기업들도 대학생 해외여행단 등의 행사를 최근까지 봇물처럼 쏟아내왔다. 경제 전문가들은 공공매체나 기업들의 이같은 행태가 일반인들의 무분별한 해외여행을 부추겨왔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사회 분위기에 따라 눈덩이처럼 불어난 여행수지 적자는 최근 외환위기를 자초하는데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는 것. 우리나라의 여행수지는 87년 16억달러 흑자를 기록한 이후 흑자가 계속 줄어 91년에 적자로 반전했다. 특히 작년에는 여행수지 적자규모가 26억달러를 넘었으며 올들어서는 9월까지만 24억6천만달러를 기록했다. 한국은행 이상헌(李相憲)조사1부장은 『지금은 외화가 한푼이라도 아쉬운 형편이므로 모든 국민이 불필요한 외화낭비를 줄여야 한다』며 『특히 공공기관과 기업들이 모범을 보여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천광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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