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철씨 「검은돈」추적]아무리 세탁해도 꼬리는 잡힌다

  • 입력 1997년 5월 10일 20시 17분


한보와 金賢哲(김현철)씨 비리사건 수사가 4개월째로 접어들면서 현철씨를 비롯한 사건 관련자들이 「검은 돈」을 나름대로 철저하게 「세탁」해 온 사실이 속속 확인되고 있다. 현철씨와 그의 측근들이 한결같이 「한푼도 받은 적이 없다」고 우겨온 것은 바로 자신들의 「돈세탁」을 믿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한보사건 1차 수사팀은 鄭泰守(정태수)한보그룹 총회장 등 관련자들의 「입」을 좇는 바람에 수사에 실패했다. 그러나 재수사팀은 치밀한 계좌추적을 통해 돈의 흐름을 파악함으로써 사건의 실체에 접근하고 있다. 검은 돈을 받으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돈세탁」이다. 돈세탁은 불법적이고 비정상적인 자금을 금융기관 등을 통해 정상적인 자금으로 만드는 과정이다. 자금추적은 바로 돈세탁 과정을 하나하나 역으로 추적해 그 뒤에 숨어있는 범죄행위를 밝혀내는 작업이다. 자금추적은 마치 물줄기를 따라가는 것에 비유된다. 일단 조그만 물줄기(수표나 어음)를 발견해 따라가다 보면 커다란 저수지(거액의 가차명 계좌)를 찾게 되며 저수지의 물을 따라가는 과정에서 또 다른 물줄기(제3의 자금)를 만난다. 현철씨 비자금 추적도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현철씨의 자금관리를 맡은 전 대호건설사장 李晟豪(이성호)씨와 공인회계사 金鍾郁(김종욱)씨 등은 주변 인물들을 동원, 현철씨의 수백억원대 자금을 수억원 단위로 쪼개 분산시켰다. 이들은 이 돈으로 제2금융권의 무기명 금융상품을 매입해 추적의 꼬리를 일단 자른 뒤 이 돈을 찾아 모(母)계좌에 입금시키고 이 돈을 1백여개의 가차명 계좌로 분산시킨 것. 검찰은 수사착수 초기 대검 중수부 검사들과 은행감독원 직원 2∼3명, 국세청 직원 5∼6명으로 구성된 자금추적 전담반을 가동했다. 이들은 현철씨 측근인물들의 관련계좌를 쫓기 시작, 출처와 사용처가 불분명한 의심스런 자금을 가려내 다시 이를 추적해 현철씨에 이르는 큰계좌를 찾아냈다. 자금추적은 처음부터 끝까지 발로 뛰는 작업이다.한 수사관은 『하나의 비계좌를 규명하려면 적어도 4∼5개 금융기관의 10여개 지점을 찾아 수십장의 마이크로 필름을 판독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같은 과정을 거쳐 검찰은 드디어 이달초 1백여개에 이르는 현철씨의 가차명 계좌를 찾아냈다. 이들 중 대부분은 돈세탁을 위해 동원된 「위장계좌」였다. 그러나 수십억원이 입금된 김종욱씨 장인 명의의 계좌를 비롯한 2∼3개의 커다란 「저수지」도 있었다. 검찰은 이 자금추적과 관련자 진술 등을 통해 현철씨의 이권개입 등 범죄사실을 상당부분 밝혀내고 있다. 〈조원표·이호갑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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