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全-盧씨 공판]「성공한 쿠데타」 단죄…역사 세웠다

  • 입력 1997년 4월 17일 20시 45분


신군부의 「역사왜곡」에 대한 단죄작업이 鄭昇和(정승화)씨의 고소이후 3년9개월에 걸친 수사와 재판 끝에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17일 내려진 대법원의 판결은 「힘이 곧 정의」로 간주되고 「쿠데타는 성공만 하면 수단이나 방법은 문제되지 않는다」는 우리사회 일부의 잘못된 인식에 쐐기를 박았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비록 직접적인 대가관계가 없더라도 재벌총수들이 대통령에게 돈을 준 행위를 범죄행위로 확정한 것도 그동안 관행화한 부패 구조를 단절하겠다는 사법부의 의지를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 12.12 및 5.18사건 ▼ 대법원의 판결요지는 지난 80년 신군부의 집권과정은 명백한 군사반란이자 내란으로 모두 불법이라는 것이다. 신군부측이 비록 새로운 법질서를 수립하는데 성공한 것은 사실이나 국민이 이들을 처벌하지 않기로 명시적인 합의를 하지 않은 이상 형사책임을 면할 수 없다는 것. 재판부는 이날 대법관 13명 전원이 이에 대해 일치된 결론을 도출함으로써 그동안 신군부측이 줄곧 주장해 온 「성공한 쿠데타 처벌불가론」을 일축하고 사법부의 단죄의지를 명백히 했다. 특히 5.18광주민주화운동에 총칼로 대응한 계엄군의 진압행위를 모두 집권을 위한 내란목적의 살인으로 인정함으로써 全斗煥(전두환)전대통령 등 신군부의 도덕성을 일절 용납하지 않았다. 신군부 집권과정에 대한 대법원의 이같은 결론은 검찰과 1,2심 재판부의 골격을 대부분 유지한 것이다. 재판부는 항소심에서 각각 무기징역과 징역 17년을 선고받은 전, 노씨의 형량이 중형인 징역 10년 이상으로 법률상 형량을 깎아줄 수 있었지만 낮추지 않았다. 헌정 질서를 파괴한 만큼 「쿠데타는 절대로 용인하지 않겠다」는 사법부의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대법원은 그러나 6.29 선언일인 87년 6월29일을 내란종료시점이라고 본 항소심 결정을 깨고 내란종료 시점은 검찰과 1심 재판부의 주장과 마찬가지로 비상계엄 해제일인 81년 1월24일이라고 선언했다. 대법원의 이같은 결정은 신군부 정권의 탄생과정은 불법이라는 사실을 재확인하되 이들이 집권한 7년 동안의 모든 통치행위마저 문제삼을 경우 파장이 크다는 점을 우려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광주학살 발포 책임자를 규명하지 못한 점과 신군부의 집권기간 내내 가장 핵심적인 위치에 있었던 崔圭夏(최규하)전대통령의 증언을 끝내 듣지 못한 점 등은 미흡한 부분으로 지적되고 있다. ▼ 비자금 사건 ▼ 재판부가 재벌총수들이 대통령에게 준 돈을 뇌물로 인정하면서도 그들의 형량을 원심대로 확정한 것은 경제현실과 여건을 고려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다만 李賢雨(이현우) 李源祚(이원조) 安賢泰(안현태)피고인에 대해서는 그대로 실형을 유지, 비자금 조성과 관리에 개입한 공직자의 책임을 엄격히 물었다. 재판부는 그러나 1,2심에서 엇갈린 판결로 논란을 불러 일으켰던 변칙실명전환 행위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항소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금융기관의 경우 거래자의 실명여부만 확인하고 돈의 실질적 주인이 누구인가에 대해서 확인할 의무가 없다고 밝혔다. 이번 판결로 차명거래는 사실상 처벌할 법적 근거가 없는 것으로 확인됨에 따라 금융실명제에 대한 보완이 불가피한 것으로 보인다. 〈이수형·하종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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