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3차공판]공소사실 부인…당황한 검찰

  • 입력 1997년 4월 15일 08시 03분


14일 열린 한보사건 3차 공판에서도 鄭泰守(정태수)피고인은 또다시 당당한 태도로 「정태수 리스트」의 공개를 거부했다. 그러나 그는 『국민회의 權魯甲(권노갑)의원에게 준 돈은 대가성이 없는 정치자금』이라고 진술함으로써 권피고인에 대한 검찰의 공소사실 일부를 부인했다. 「폭탄선언」을 피해가면서 「유탄」하나를 발사한 셈이다. 이 「유탄」으로 곤경에 처한 것은 검찰이다. 정피고인의 진술이 받아들여져 권의원에게 일부 또는 전부 무죄가 내려질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정피고인은 특히 『진술을 번복한 것이 아니라 처음 검찰 수사과정에서부터 똑같은 내용을 진술했다』고 주장함으로써 검찰이 신한국당 洪仁吉(홍인길)의원의 비중에 걸맞은 야당의원으로 권의원을 무리하게 구속하지 않았느냐를 놓고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제기한 권의원의 공소사실은 △지난 93년 3월과 12월, 96년 3월에 정피고인을 직접 만나 국정감사 무마 청탁을 받고 각각 5천만원씩 모두 1억5천만원을 받았으며 △96년 10월 鄭在哲(정재철)의원에게서 같은 내용의 부탁과 함께 정태수피고인이 건넨 1억원을 받았다는 것. 이중에서 정태수피고인은 자신이 직접 건네준 1억5천만원에 대해 『구체적인 부탁없이 의례적으로 제공한 정치자금』이라고 진술했다. 그는 권의원측 변호인인 千正培(천정배)변호사가 다시 확인질문을 하자 『(권의원에게 돈을 줄)당시에는 현안이 없었다. 검찰에서도 같은 이야기를 했다』고 대답했다. 당황한 검찰이 즉시 보충신문을 요청, 『그때 권의원에게 돈을 주면서 「우리회사가 어려울 때 도와달라」며 돈을 주지 않았느냐』고 추궁하자 『그때 다른 문제는 없었다』며 똑같은 진술을 되풀이 했다. 이에 앞서 정의원에 대한 신문에서도 권의원의 나머지 혐의부분이 논란의 대상이 됐다. 권의원측 변호인이 국회 국방위 국감일정과 의원 참석일 조사자료 등을 내세우며 정의원에게 돈을 준 장소와 날짜를 따지자 정의원은 『돈을 준 날이 휴일일지도 모른다』 『장소는 국감장이다』 『의원 휴게실일 수도 있다』며 말을 바꾸었다. 이처럼 정의원 진술 자체가 흔들림에 따라 권의원에게 적용된 뇌물죄의 핵심 구성요건인 「대가성」(직무관련성)이 흔들리게 됐다. 물론 「국감무마」라는 대가성이 흔들린다고 해서 바로 무죄가 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직무관련성은 포괄적으로 인정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럴 경우 형평의 원칙상 「정태수 리스트」에 오른 정치인 모두를 뇌물죄로 처벌해야 하는 문제가 생길 수도 있어 향후 재판진행이 주목된다. 〈이수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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