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피고인 4명 수뢰의 辯]『이사갈 돈 모자랐다』

  • 입력 1997년 3월 31일 19시 48분


「왜 우리는 돈을 받을 수 밖에 없었는가」. 한보특혜비리사건 2차 공판이 열린 서울지법 417호 대법정은 피고인석에 선 전현직 장관과 의원들의 이에 대한 구구한 변명의 장(場)이었다. 가장먼저 변호인 신문을 받은 洪仁吉(홍인길)의원과 金佑錫(김우석)전내무장관은 자신들이 받은 돈이 「대가성 뇌물」이 아니라 항상 돈이 필요한 정치인으로서 받은 「단순한 정치자금」이라고 주장했다. 홍의원은 자신이 당시 경제수석에게 대출을 부탁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국가기간산업인 철강산업이 완공을 앞두고 대출이 안돼 쓰러진다는 것은 국가적으로 손해라는 판단에서 부탁한 것』이라고 강변했다. 홍의원은 『鄭泰守(정태수)총회장으로부터 받은 돈으로 개인적 축재에는 한푼도 사용하지 않고 돈이 없어 어려운 국회의원 동료들을 돕거나 경조사비에 사용했을 뿐』이라며 순수한 정치자금임을 거듭 주장했다. 김전장관도 홍의원처럼 정치자금으로 받았을 뿐이라고 강변했다. 김전장관은 정총회장이 돈을 줄 때도 『송파구 지구당위원장으로서 쓸 돈이 많을 것』이라며 돈을 건넸다는 점을 그 근거로 들었다. 黃秉泰(황병태)의원은 『예천전문대 후원금으로 2억원을 받았을 뿐 뇌물성으로 받은 돈이 아니었다』고 검찰의 기소내용을 뒤집으며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 그는 『정총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을 때 예천전문대 후원회비로 사용하겠다는 이야기를 했으며 예천주민들에게도 2만5천통의 편지를 띄워 이같은 사실을 알렸다』고 말했다. 황의원은 『예천전문대 후원회장을 맡고 있는 사람으로 지원금 20억원을 모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아무런 생각도 없이 돈을 받았다』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는 『1차 피의자 신문조서에서 이같은 내용을 밝히지 않은 것은 한보사건이 터지자 「한보와 예천전문대 후원회 기금모집과 연관시키지 말라」고 말한 예천지역 유지들의 부탁을 지키기 위해 거짓진술을 했다』고 덧붙였다. 禹찬穆(우찬목)전조흥은행장은 아들의 자살이라는 개인적인 슬픔을 뇌물을 받은 이유로 내세우며 선처를 호소했다. 우전행장의 아들은 지난 95년 12월 교통사고로 팔을 잃고 의사로서 성공하지 못한다는 자괴감에 빠져 아파트에서 투신자살했다. 우전행장은 이를 잊기 위해 이사하려 했지만 청렴하게 살다보니 돈이 부족해 고민하고 있던 차에 정총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자 욕심이 생겨 돌려주지 못했다고 말했다. 〈조원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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