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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정치

이재명의 ‘그 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김지현의 정치언락]

입력 2023-01-23 14:00업데이트 2023-02-02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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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원하는 바대로, 공격하면 힘들어서 피하는 건 우리 당원이나 국민들의 민주당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18일 KBS9시뉴스에 출연해 ‘당 대표직을 유지하면서 사법리스크에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KBS캡쳐 화면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18일 KBS9시뉴스에 출연해 ‘당 대표직을 유지하면서 사법리스크에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KBS캡쳐 화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18일 KBS 9시뉴스에 생방송으로 출연해 ‘당 대표직을 유지하면서 사법리스크에 대응할 것이냐’는 질문에 이 같이 답했습니다. ‘당 대표직에서 물러날 생각도 없고, 물러나서도 안 된다’는, 결연한 의지마저 느껴지는 발언이었습니다.
설 연휴 직후 검찰에 또 다시 불려가게 된 이 대표의 기소 가능성에 점점 더 무게가 실리는 가운데 당 안팎에선 지난해 한 차례 불거졌던 ‘당헌 80조’ 논란이 다시 제기되는 중입니다. 이에 대해 이 대표가 직접 ‘찬물’을 끼얹으며 사퇴 가능성을 조기에 일축했다는 해석입니다.

지난해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방탄 개정’, ‘꼼수 개정’이라 비판받았던 당헌 80조 기억하시나요?

지난해 6월 보궐선거로 국회에 입성한 이재명 대표(당시 의원)의 전당대회 승리가 이미 유력하게 점쳐지던 당시 민주당 전당대회준비위원회는 슬그머니 당헌 80조 개정 작업에 돌입했습니다. 주요 당직자에 대해 ‘기소 시 당직정지’라고 규정돼 있던 80조 1항을, ‘1심에서 금고 이상 유죄 판결 시 정지’로 바꾸려 했던 거죠. 이렇게 될 경우, 재판이 모두 끝나 형이 최종 확정될 때까지는 당직을 유지할 수 있게 됩니다.

심지어 전준위는 이런 중요한 결정을 두고 당 의원총회에서 의원들이 이를 둘러싼 치열한 자유토론을 한창 하고 있는 와중에 의결을 강행해 버렸습니다. 논란이 일자 전준위원장이었던 안규백 의원은 “정치보복 수사에 대한 불신이 상당히 높은 환경”이라며 “어떤 한, 두 사람을 위한 것이 절대 아니다”라고 결코 이재명 ‘예비 대표’를 위한 사전 조치가 아니라고 해명했습니다.

하지만 비명(비이재명)계의 반발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더군다나 이 조항은 2015년 문재인 당시 당 대표가 당 혁신안 중 하나로 채택했던 것이죠. 전해철 의원 등 친문(친문재인) 진영을 중심으로 “과거로 퇴행하자는 거냐”는 비판이 이어져고, 결국 비상대책위원회가 나서 부랴부랴 수습에 나섰습니다. 고심 끝에 1항은 그대로 두되, 3항을 살짝 손보는 방법이었습니다.





미묘한 차이가 보이시나요. 외부인사가 원장을 맡는 독립기구인 윤리심판원 대신 당무위원회가 정치탄압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도록 한 겁니다.

당무위원회는 당무 집행에 관한 민주당 내 최고 의결기관으로 100명 이하로 구성됩니다. 그 멤버 면면을 한번 보겠습니다.

이 대표 본인을 포함해 박홍근 원내대표, 정청래 고민정 박찬대 서영교 장경태 서은숙 임선숙 최고위원(7명), 조정식 사무총장, 김성환 정책위 의장 등 ‘친명’ 지도부만 해도 이미 11명입니다. 이 밖에 현역의원들인 국회 상임위원회 위원장이나 시·도당 위원장들은 물론이고, 내년 총선에서 당 대표로부터 공천을 받아야 하는 원외지역위원장이 당무위에 ‘반대’ 의견을 내긴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겁니다.

더군다나 가장 중요한 건 ‘③당무위원회 의장은 당대표가 맡는다’라는 조항입니다. 이 대표가 기소될 경우 본인이 의장을 맡아 스스로 본인의 기소 사유가 정치탄압인지를 판단하게 되는 거죠. ‘셀프 구제’, ‘셀프 면죄부’라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입니다. 당규에 따르면 당무위 준비에 필요한 사항은 사무총장이 총괄하며, 표결방법은 거수 또는 기립으로 하되, 인사에 관한 사항은 비밀투표로 하도록 돼 있습니다.

이 때문에 이미 비명계에선 이 대표 소환 직후부터 당헌 80조가 다시 수면 위로 등장했습니다.

이에 맞서 친명(친이재명)계에선 ‘당헌 80조를 손봐야 한다’는 기류도 조금씩 포착됩니다. 이미 정청래 최고위원은 지난해 8월 전당대회 이전부터 ‘내가 지도부에 들어가게 되면 당헌80조를 폐지할 것’이라고 공공연히 말하기도 했죠. 이 대표가 실제 기소된다면 이를 둘러싸고 당 내 또 한번 정면충돌이 예상되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 대표의 과거 발언들을 찾다 보니 이 대표가 2020년에만 해도 당헌에 손 대는 것에 대해 굉장히 엄격한 잣대를 갖고 있더군요? 2020년 7월 경기도지사였던 그는 당시 민주당이 당헌을 바꿔 이듬해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 후보를 공천하려는 움직임에 대해 이렇게 비판했습니다.

원래 민주당 당헌상엔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의 중대 잘못으로 인해 재·보궐 선거가 실시될 경우, 해당 선거구엔 후보자를 추천하지 않는다’고 명시돼 있었죠. 그런데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이 나란히 성추행으로 물러났는데도 민주당이 다시 후보를 공천하려고 당헌 개정에 나선 것을 이 같이 비판한 것입니다.

그 때만 해도 ‘장사꾼도 그렇게 장사 안 한다’고 말할 정도로 원칙주의자였던 이 대표는 그로부터 2년 뒤엔 당헌 개정에 대한 입장이 이렇게 또 뒤바뀝니다.

“그 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라더니, 이 대표에게는 민주당 당헌이 그러한가 봅니다.

최근 만난 한 야권 원로는 “당의 당헌이라는 게 나라로 치면 헌법인데, 그런 당헌을 요즘은 여야 할 것 없이 너무 쉽게 바꾼다”고 지적했습니다. 국민의힘도 당 내 주요 선거를 앞두고 자주 당헌을 바꿔왔죠.

“결국 자기들 입맛대로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당헌을 이용하는 것이다. 정치가 이렇게 원칙이 없으니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모두 지지율이 이 지경인 것”이라는 이 원로의 말을 여야 지도부 모두 새겨 들었으면 합니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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