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델과 대담 이재명 “대입추첨제 공감…할당제 폐지는 위험”

  • 뉴시스
  • 입력 2021년 12월 21일 14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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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21일 “나는 기회가 많은 수도권에서 태어났지만 누군가는 저발전 상태의 지방에서 태어나는 상황에서 각자가 능력을 개발해도 최종적으로 대학에 들어가거나 공무원 시험을 보거나 회사에 취직할 때 과연 동등하게 기회를 누렸다고 할 수 있겠냐”며 대학입학 추첨제에 공감을 표했다.

이 후보는 이날 오전 서울 중구 정동1928 아트센터에서 열린 마이클 샌델 미국 하버드대학교 교수와 가진 화상 대담에서 “교수님께서 쓰신 책 내용 중에 차라리 (대학입학) 추첨제도가 더 공정하지 않을까라는 문제 지적을 해주셨는데 저도 사실 그 점에 공감하는 바가 많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 후보의 이같은 언급은 샌델 교수가 능력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명성있는 대학에 입학한 학벌이 좋은 엘리트 계층들은 이 사회에서 성공하지 못한 자들에게 ‘내가 노력해서 입학했고 성공했다’고 말한다. 이런 태도는 미국의 현재 정치 상황에서 포퓰리즘이 유행하게 된 원인”이라고 한 데 대한 공감 속에서 나왔다.

이 후보는 “결국 힘든 곳을 더 많이 배려한다, 더 짧은 곳은 더 길게 지원해준다고 하는 게 바로 정치의 역할”이라며 “개인적 영역에서는 경쟁 자체가 무한하게 단일 기준에서 일어나지만 정치는 자원을 재분배하는 권한을 갖고 있기 때문에 경쟁의 룰에서 형식적 공정이 아니라 실질적 공정이 가능하도록 하는 배려를 하는 게 바로 정치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정의란 무엇인가’ ‘공정하다는 착각’ 등의 저작으로 유명한 샌델 교수와 1시간 가량 진행된 대담에서 이 후보는 능력주의의 부작용과 공정의 가치를 주제로 문답을 주고 받았다.

이 후보는 “교수님 책을 정말 여러차례 반복해 읽을 만큼 교수님의 팬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다시 교수님이 공정하다는 게 과연 보기만큼 공정한가라는 의문을 제기했는데 제가 현실적으로 대한민국 정치에서 고민하는 의제와 너무 일치해 깜짝 놀랐다”며 공정과 정의의 관계에 대한 견해를 물었다.

샌델 교수는 한국인들이 대한민국을 불공정 사회로 인식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를 거론하면서 “기득권 계층에 진입한 사람들의 성공이 자신들의 노력에 대한 결과물이라고 믿고 자만심이 생기게 되는 것이 이러한 현상의 원인”이라며 “이런 사회적 현상을 제가 공정하다는 착각이라고 말씀드린 것이고 빈부격차를 먼저 해결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첫번째 시작점”이라고 진단했다.

이에 이 후보는 공감을 표하면서 세계경제가 저성장의 늪에 빠지다보니 기회 부족을 초래하고 그것이 청년세대에 능력주의가 만연하게 된 원인이라고 짚었다.

이 후보는 “우리 기성세대는 많은 기회 속에서 기회를 누리며 살았기 때문에 관대해질 수 있었는데, 즉 정의에 대한 공감도가 매우 높을 수 있었는데 지금은 기회가 적으니까 경쟁이 전쟁이 되고 친구는 적이 되는 상황”이라며 “(청년세대는) 공정성에 대한 열망이 높아지고 불공정에 대해 더 많이 분노해서 오로지 시험으로 본 최종 결과만으로 결과를 내야지 왜 소수나 약자들을 배려하느냐는 생각까지 빠지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능력주의의 폐단에 대한 두 사람의 공감은 한국 드라마인 ‘SKY캐슬’과 ‘오징어게임’을 화두로 한 대화로 이어졌다.

샌델 교수는 “제가 최근에 관심 있게 본 한국 드라마는 SKY캐슬인데 굉장히 치열한 한국의 입시 경쟁을 보여주는 드라마였다. 최근에는 오징어게임도 봤는데 국제적으로 엄청나게 큰 반향을 일으켰다”며 “능력주의에 대한 엄청난 결함, 그리고 그 체제에서 밀려난 사람들에게 주는 패배감을 잘 나타내주는 프로그램이었다”고 했다.

이 후보도 “SKY캐슬이라는 작품은 입시제도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대한민국 학생들의 학력 수준은 결국 부모의 경제력 수준과 거의 대부분 일치한다는 게 사실 통계적으로도 드러나고 있다”며 “능력주의라는 게 극단적으로 발현되는 게 학력주의다. 교수님이 걱정한 ‘능력이 있다고 평가되는 것 자체가 이미 불평등이 내재돼 있다’는 문제는 현실적으로 매우 적합한 지적”이라고 호응했다.

오징어게임에 대해서는 “전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일으킨 이유는 공감도가 높았기 때문인 것 같다. 과거에는 경쟁에서 지면 약간 부족한 자리를 차지하지 아예 배제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경쟁에서 탈락하면 곧 죽음이다. 생존의 문제가 돼 버린 것”이라며 “마치 오징어게임 속의 경쟁자처럼 내가 살려면 누군가 죽어야 한다. 기회는 하나 밖에 안 남고 나머지 455명은 결국 탈락해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에는 소수인종, 취약계층, 지역배려가 있는데 대한민국에는 할당제가 있다. 그런데 아쉽게도 최근 경쟁이 격화되다보니 그런 것조차도 배려할 필요 없이 오로지 경쟁의 결과물만 갖고 최종적 결론을 내자고 해서 소수자와 취약계층을 위한 할당제를 통째로 폐지하자는 얘기가 상당히 많이 있다”며 “실제로는 지금의 정치 현실에서 유력 정치인들이 그 얘기를 하는데 저는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한다”고 우려했다.

샌델 교수는 “그들은 자신이 모두 스스로 만든 결과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비(非)기득권 계층에 대한 책임 의식이나 부채 의식을 전혀 갖고 있지 않다. 하지만 그들이 한 가지 간과하고 있는 것은 그들의 성공에는 운이 크게 작용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후보가 언급한 대입추첨제에 대해 “굉장히 획기적 제안이다. 스탠포드와 하버드 등 명성 있는 대학은 지원자 수를 고려했을 때 합격자의 수가 굉장히 적다. 이런 학교에 지원하는 규모는 5만명 정도인데 그 중에 2만~2만5000명 정도는 입시추첨제의 자격이 있다”며 “이런 제도를 제가 책에서 제안한 것은 명성있는 대학에 입학하게 되는 것에는 자신의 노력 뿐 아니라 운도 크게 작용했다는 것을 그들에게 인지하게 해주고 싶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자 이 후보는 “사실 대한민국 입시제도도 교수께서 말한 추첨 요소가 조금은 가미돼 있다. 0.001% 소수점까지 갖고 평가하는 게 아니고 등급제라는 것을 도입해서 일정 점수 이상이 되면 같은 등급 안에서는 점수 차이에도 불구 같은 평가를 받도록 하는 게 있다”며 “추첨제가 갖고 있는 그런 장점을 일부 관여한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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