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작권 전환을 보류하는 과감한 조치가 필요하다 [우아한 전문가 발언대]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9월 21일 15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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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 건너 미국 땅에서 발간되는 책에 수록된 북한 핵과 관련하여 한-미 간 한판 신경전이 벌어졌습니다.

한국과 일본의 유력 언론들은 15일(현지시간) 발간된 ‘격노(Rage·밥 우드워드 저)’에 ‘2017년 북한이 미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ICBM(화성-15 형) 발사 이후 미 전략사령부에서 핵무기 80개를 사용할 수 있는 작계 5027을 검토한 바 있다’는 내용이 실렸다고 크게 보도했습니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핵무기 사용은 우리 작전계획에 없고, 한반도 내 무력 사용은 우리나라 동의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반박했습니다.

일각에서는 80개의 핵무기는 미국이 아니라 북한이 미국을 공격하는 용도라며 오역 논란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전체적인 맥락으로 보면 미국의 북한 공격용이 맞다는게 대체적인 평가입니다. 만일 당시 미국이 북한에 핵 사용 위협을 공개적 또는 비공개적으로 가했다면 실행도 못 할 ‘핵 공갈(핵무기를 사용하겠다는 엄포)’을 다시 사용한 사례가 됩니다.

●미국의 대북 ‘핵 공갈’ 역사
미국이 북한에 구사한 ‘핵 공갈’ 역사는 매우 길고도 깊습니다. 미국은 북한과 군사 충돌이나 갈등이 생길 때마다 ‘핵 공갈 주사’를 놓았고, 이 주사는 3대에 걸친 북한 최고지도자들에게 ‘미제는 어떤 경우에도 우리에게 핵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면역력을 생성시켰다고 봅니다. 저작집에 따르면 김일성은 6·25 전쟁과 이후 미국과의 대결 경험으로부터 생성된 ‘핵 공갈 면역력’에 대한 확신을 아래와 같이 나타냈습니다.

“지금 미제국주의자들은 원자탄을 가지고 위협하고 있지만 조금도 겁날 것이 없습니다. (중략) 이것은 이번 푸에블로호사건(1968년 1월 23일 북한 원산항 앞 공해상에서 미국의 정보수집함 푸에블로호가 북한군 해군초계정 4척과 미그기 2대에 의해 납치된 사건)이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중략) 미국놈들은 우리가 푸에블로호를 붙들자 우리를 위협하였습니다. (중략) 그런데 적들은 감히 덤벼들지 못하였으며 석달이 지난 오늘까지도 대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미제국주의자들의 핵공갈 정책도 완전히 파탄되였습니다. 미제는 조선전쟁과 월남전쟁에서 많은 군대를 잃고 수치스러운 참패를 당하면서도 원자탄을 쓰지 못하였습니다. 미제국주의자들은 앞으로도 원자탄을 함부로 쓰지 못할 것입니다.”

김정일은 아버지 김일성의 ‘핵공갈 면역 DNA’를 그대로 이어받아 “조국해방전쟁시기와 그 이후 미제는 우리나라와 세계 도처에서 원자탄을 쓰겠다고 여러 번 위협하였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한 번도 원자탄을 쓰지 못하였다”고 호언한 바 있습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핵 보유 유훈’을 관철하기 위해 3~6차 핵실험을 감행한 김정은 역시 “군사기술적 우세는 더는 제국주의자들의 독점물이 아니며 적들이 원자탄으로 우리를 위협 공갈하던 시대는 영원히 지나갔다. 오늘의 장엄한 무력시위가 이것을 명백히 확증해 줄 것이다”라고 강변한 바 있습니다.

●북의 ‘핵 개발 기만전술’의 합작품
이처럼 미국에 의해 키워진 북한의 ‘핵 공갈 면역력’은 ‘핵 보유를 위한 기만전술’과 결합하여 ‘핵 무력 강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생전 김일성은 아래 표와 같이 자신들의 핵무기 개발 사실을 부인하며 해외 친북 인사나 단체, 언론사들을 이용하여 한국과 서방세계를 철저히 기만하였습니다.



김일성의 기만전술은 1994년 7월 8일 사망 직전까지 ‘핵무기 불필요’ ‘핵 개발능력 부재’를 떠벌리며 우리들의 경계심을 둔화시켰습니다. 김정일과 김정은은 2008년 6월 27일 영변 냉각탑 폭파, 2018년 5월 24일 풍계리 핵실험장 갱도 폭파 등 ‘기만 위장쇼’로 핵 개발 사실을 부인하거나 각종 회담에서 합의와 파기를 반복하는 지연전술 끝에 6차례의 핵실험에 성공하였고 미 본토 및 태평양에 있는 미군기지를 사정권에 둔 ICBM과 SLBM을 개발하고, 급기야 2017년 11월 29에는 ‘핵 무력 완성’을 천명하였습니다.

●북한 핵에 대응할 우리의 카드는?
이번 ‘격노’에 수록된 미국의 ‘대북 핵 공격계획 검토’와 이를 반박하기 위한 청와대의 ‘작전계획 공개’는 군사전략적 관점에서 과연 적절한 것일까요. 북한 핵에 대응할 ‘생존 카드이자 가장 효율적인 협상카드’가 될 수 있는 ‘미국의 핵우산 전략 카드’를 왜 뚜렷한 대안도 없는 상황에서 공개하고 또 이를 거부하는 듯한 의사를 밝혔는지 아쉽기만 합니다.

미 국방부 산하 육군부가 작성한 대북 대응작전 지침 보고서인 ‘북한 전술’은 이미 “북한이 20~60개의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다고 미국의 소리(VOA) 방송이 지난달 보도했습니다. 북한은 이에 대해 “미제의 핵 공갈 위협에는 무자비한 핵 공격으로(로동신문, 2013.3.29.)” “핵에는 핵으로 맞서 싸울 수 있는 위력한 수단을 가지게 되었다(로동신문, 2016.4.19.)”며 핵무기에 대한 ‘불변적 인식’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이에 대응할 현실적 전략을 가지고 있는지 걱정스럽습니다. 서욱 국방부장관후보자는 16일 국회 청문회 답변에서 “굳건한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체계적이고 적극적으로 가속화해 나가겠다”고 말했습니다.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은 한미연합군의 지휘권 교체를 의미합니다. 지휘관과 부지휘관의 지위가 바뀌는 것입니다. 사실 부지휘관은 권한도 책임도 없습니다.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전제로 한 ‘굳건한 한미동맹’은 어불성설(語不成說)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과거 푸에블로호 피랍사건과 EC-121격추사건(1969.4.15),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1976.8.18) 등 북한군에게 직접 공격을 당하고도 ‘무력시위와 핵 공갈’ 선에서 그친 미국이 지휘권까지 넘겨준 상태에서 무슨 실익을 위하여 한국에 핵우산 등 적극적인 군사 개입을 할까요?

더구나 과거 미-소 양극체제(냉전체제) 시절과 달리 한국과 미국의 정치지형과 양국 국민들의 정치 성향도 매우 다양해진 상태에서 한반도 유사시 핵무기를 비롯한 미국의 직접적인 군사 지원과 개입은 더욱 제한될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뜨거운 가슴보다 냉철한 머리로 역사를 엄중히 조명하고 한반도 주변 정세를 보다 객관적으로 평가한 현명하고 지혜로운 북핵 위협에 대응하는 전략이 요구되는 시점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한 첫 걸음은 북한의 핵 위협을 막아낼 정도로 충분한 능력과 의지를 갖는 시점까지 전작권 전환을 보류하는 과감한 조치가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유판덕 한국평화협력연구원·한국DMZ학회 이사(예비역 중령·북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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