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핵화 생각없던 김정은, 비건案-백악관案-트럼프案 모두 퇴짜”

한기재 기자 입력 2020-06-23 03:00수정 2020-06-24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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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턴 회고록 후폭풍]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뒷얘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2월 27일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하노이=AP 뉴시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9년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미국의 제안에 대해 총 세 차례나 ‘거부권’을 행사하며 하노이 결렬을 자초했다고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회고록에서 주장했다. 슈퍼 매파로 통하는 볼턴이 발끈했을 정도로 상대적으로 유연한 제안을 했으나 김 위원장이 ‘영변 핵시설과 핵심 대북제재 전체를 맞바꾼다’는 전략을 집요하게 고집하다가 결국 빈손으로 평양에 돌아갔다는 것이다.

볼턴 회고록에 따르면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전후한 북한의 첫 거부 대상은 현 국무부 부장관인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의 ‘실무안’이었다. 회고록에 따르면 비건 대표는 볼턴과 같은 대북 강경파의 반대에도 ‘비핵화 로드맵 및 비핵화에 대한 정의(definition) 합의’를 골자로 한 협상안을 밀어붙이려 했다. 비핵화 과정의 전체 그림을 그려가자는 데 북한이 합의해주면 미국이 이에 대한 보상을 시작할 수 있다는 안. 볼턴이 이를 “마치 북한이 써준 듯한 제안이었다”고 맹비난했음에도 비건 대표가 관련 내용이 담긴 ‘북-미 합의 초안’을 북한에 독단적으로 건넬 정도로 열의를 보였다. 이에 대해 볼턴은 회고록에서 “국무부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하노이에 도착하기 전까지 비건의 초안 내용 중 가능한 한 모든 부분을 합의로 만들어 내기 위해 초과 근무에 나섰다”고 적어 하노이 현지에서 진행된 실무협상에서 비건 대표가 북한을 대상으로 전방위 설득에 나섰다는 점을 설명했다. 그럼에도 김 위원장은 이 제안을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자리에서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북한이 뒤이어 퇴짜를 놓은 안은 북한이 보유 중인 핵 관련 무기 및 시설 리스트를 신고하면 보상을 줄 수 있다는 백악관의 ‘빅딜 안’이었다. 회고록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회담 전날 만찬과 단독회담에서 ‘영변-제재 해제’ 안에 대해서만 이야기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이 “(확대회담 시작 전 휴식시간에) 무슨 새로운 아이디어를 갖고 온 것이 있느냐”고 묻자 김 위원장은 “내 전임자들이 지금껏 제의했던 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걸 갖고 하노이까지 왔다”고 답했다. 영변 핵시설을 내놓는 것이 얼마나 큰일인지에 대해 반복적인 강조만 하며 미국의 ‘빅딜 안’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했던 것이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이 ‘빅딜’을 고수하던 자신의 입장을 바꿔 ‘스몰딜 역제안’을 내놨으나 김 위원장은 이것마저도 거부했다. 회고록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게 “(영변 카드 외에) 다른 것을 더할 수는 없느냐. 예를 들면 제재의 전체가 아닌 1% 해제 같은 것 말이다”라고 물었다. 볼턴이 “만약 김정은이 이에 대해 ‘예스’ 했다면 미국에 재앙적인 거래를 하게 됐을지도 모른다”고 적었을 정도로 파격적인 ‘스몰딜’ 제의였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이에 대해서도 “그렇게 되면 나는 얻는 게 없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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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트럼프는 “미국을 때릴 수 있는 장거리미사일을 없애는 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으나 김 위원장은 “단계적으로 간다면 결국엔 포괄적인 그림으로 나아갈 것”이라며 ‘영변-제재 해제’ 방안을 재차 고집했다. 그러면서 김 위원장은 “북한이 안보를 확보할 수 있는 법적 보장이 없다”며 불만을 털어놓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무슨 보장을 원하느냐”고 물었으나 김 위원장은 “외교관계가 없으며 70년의 적대관계와 8개월의 개인적 관계만 있을 뿐이다”라고 답했다.

회고록에 따르면 이 같은 ‘실랑이’가 이후로도 계속됐으며, 끝내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가) 막다른 길에 도달했고, 현 만남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불가하다”고 인정하면서 하노이 결렬이 확정됐다.

한기재 기자 record@donga.com


#북미 비핵화 협상#김정은#하노이 결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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