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독 이어 주한미군도… 트럼프 ‘글로벌 안보 발빼기’ 메시지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6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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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측근 ‘주한미군 감축’ 언급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을 비롯한 주요국 내 미군 감축을 원하고 있다는 리처드 그리넬 전 독일 주재 미국대사(사진)의 인터뷰가 미 대선을 5개월 앞두고 미묘한 파장을 낳고 있다. 유럽 내 미국의 군사적 요충지인 독일에서 미군 감축 논의가 현실화될 조짐을 보이는 시점에 주한미군 감축설이 불거져 나왔기 때문이다.

그리넬 전 대사는 11일(현지 시간) 독일 일간 빌트와의 인터뷰에서 주독미군 철수 논의가 나온 배경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미국은 다른 나라의 안보를 위해 너무 많은 돈을 지출하는 데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며 “이것은 미국에서 뜨거운 논쟁거리다. 트럼프 대통령은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한국, 일본, 독일 등지에서 미군을 데려오고 싶어 한다. 이것은 매우 분명하다”고 말했다. 그리넬 전 대사는 트럼프 대통령의 안보 정책 기조를 잘 이해하고 있는 측근. 지난해 2월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미국대사의 후임자로도 거론됐고, 올해 2월에는 국가정보국장(DNI) 대행에 선임됐다. 이후 지난달 22일 존 랫클리프 신임 DNI에 대한 상원 인준안 표결이 통과되면서 대행직을 마무리했다.

일단 한미 외교가에선 그의 발언이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서 한국을 압박하기 위해 나왔다는 분석이 많다. 그리넬 전 대사는 최근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독일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2%의 방위비 지출이라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의 목표를 충족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독일은 방위비로 GDP의 1.2%를 지출하고 있다.

더 나아가서 그의 언급을 트럼프의 대선 전략과 연계해서 봐야 한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잘못 다룰 경우 선거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북핵과 같은 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해 한반도 등 해외 이슈에서 한동안 발을 빼거나 적극적 관여 정책(engage)을 펴지 않겠다는 메시지라는 것. 트럼프는 2016년 미 대선전에서 ‘미국 우선주의’를 펴며 ‘러스트 벨트’ 등에 집중된 백인 노동자층에게 어필했다. 그중 대표적인 게 주한미군을 비롯한 해외 주둔 미군의 대대적인 철수 또는 방위비 인상론이었다. 그리넬 전 대사의 언급은 ‘미국 우선주의 2.0’의 신호탄 아니냐는 것이다.

실제로 트럼프 행정부는 이른바 위험 지역에서의 미국 철수를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이라크 주둔 미군을 수개월 안에 감축하기로 이라크와 합의했다고 AFP통신이 이날 보도하는 등 중동 지역에서의 미군 철수 계획에도 속도가 붙고 있다. 미 국방부는 지난달에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패트리엇 미사일 2개 포대를 철수시켰다. 아프가니스탄에서도 철수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아무튼 트럼프 핵심 측근발 주한미군 감축설에 청와대 등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12일 “독일과 한반도 상황은 전혀 다르다. 독일 기준으로 (주한미군 감축) 문제를 논의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외교·국방당국도 한미 간 주한미군 감축 문제가 전혀 논의된 바 없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우리 정부의 이런 전망과 달리 주독미군 감축(9500여 명)이 현실화되면 주한미군 주둔 체계에 어떤 식으로든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해외 주둔 미군 가운데 주한미군(2만8500여 명)은 병력 규모로 보면 주일미군(5만4000여 명), 주독미군(3만4670여 명)에 이어 세 번째. 하지만 육군(지상군) 병력은 2만여 명으로 주독미군(2만770여 명) 다음으로 많다. 주일미군의 경우 육군은 2500여 명이고, 대부분 해군·해병대 병력이다. 군 소식통은 “예산 절감 차원의 해외 미군 감축은 대부분 육군에서 이뤄졌다”면서 “주독미군 다음의 감축 순위는 주일미군보다는 주한미군이 될 소지가 크다”고 말했다.

향후 주한미군이 감축될 경우 그 규모는 최소 3500명 이상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노무현 정부 당시 한미가 3만7500여 명에서 2만5000명으로 순차적 감축에 합의한 뒤 감축을 추진하다 이명박 정부에서 중단된 최종 감축분(3500여 명)이 기준점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또 다른 소식통은 “9개월 주기의 미군 순환배치 병력(5000명 안팎)을 일거에 확 줄이거나 한국과의 방위비 협상 국면을 봐가면서 2, 3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감축하는 시나리오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 워싱턴=이정은 / 파리=김윤종 특파원
#미국#주독미군#주한미군 감축#트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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