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때마다 삭발, 단식 극단적 카드…‘황교안식 리더십’ 통할까?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1월 26일 17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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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7일째 단식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의 농성장을 찾은 나경원 원내대표를 비롯한 한국당 의원들이 황 대표와 대화를 하고 있다. 2019.11.26/뉴스1 © News1
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7일째 단식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의 농성장을 찾은 나경원 원내대표를 비롯한 한국당 의원들이 황 대표와 대화를 하고 있다. 2019.11.26/뉴스1 © News1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의 단식이 26일로 일주일째를 맞았다. 황 대표 단식이 여야 패스트트랙 협상의 핵심 변수로 떠오르면서 “황교안식 ‘지르기 정치’의 진가가 나타나는 게 아니냐”는 평가가 나왔다. 당내 반대를 무릅쓰고 강행한 대규모 장외집회와 삭발에 이은 단식이 의외의 정치적 효과를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얘기다.

● 정치권 ‘장외 회동장’이 된 황교안 천막

전날까지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기 위해 한 차례 청와대 앞 농성 텐트 밖으로 나왔던 황 대표는 이날은 한 차례도 나오지 못하고 텐트 안에만 누워있었다. 나경원 원내대표 등 한국당 의원들이 오전 당 회의 전 천막에 들렀을 때도 황 대표는 누운채 “수고해 달라”는 말만 했다. 한국당 관계자는 “신장 이상 징후인 단백뇨(단백질이 섞여나오는 소변)가 나오고 심박수가 불규칙해진데다 감기까지 겹쳐 건강이 급격히 악화됐다”고 말했다.

선거법 등 패스트트랙 지정 법안에 대한 국회 협상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황 대표의 단식 천막이 여야의 장외 회동장이 되는 현상도 벌어졌다. 선거제도 개편을 놓고 문재인 대통령과의 청와대 회동에서 고성을 주고받았던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와 보수통합 협상을 제의한 뒤 한 차례도 만난적 없던 바른미래당 유승민 의원도 이날 각각 황 대표를 찾아왔다.


손 대표는 황 대표를 만나고 나와서 기자들에게 “빨리 일어나서 손잡고 좋은 나라를 같이 만들자고 얘기했다”며 “하루빨리 단식을 풀고 대화를 통해 함께 해결해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유 의원은 “선거법 개정안과 공수처법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국회의원들이 힘을 합쳐 막아볼 수 있도록 하자는 얘기를 했다”며 “마스크를 벗고 말씀하시려고 하기에 ‘벗지 말라’고 했고 황 대표는 고맙다고 답했다”고 전했다. 단식 일주일 동안 정의당 심상정 대표를 제외하고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민주평화당 정동영 등 여야 대표급 인사들이 모두 단식 현장을 찾은 셈이며, 이낙연 국무총리도 황 대표를 만나고 간 것이다.

전날 “농성 천막을 철거하지 않으면 행정대집행을 하겠다”고 통보했던 한국관광공사(청와대 앞 농성장 부지 관리기관)는 저녁 늦게까진 집행을 하지 않았다. 항한국당은 행정대집행이 들어오더라도 결사 저지하겠다는 방침이다.

바른미래당 유승민 의원이 26일 오전 이레째 단식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의 청와대 앞 농성장을 찾아 황 대표와 대화를 나눈 뒤 취재진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19.11.26/뉴스1 © News1
바른미래당 유승민 의원이 26일 오전 이레째 단식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의 청와대 앞 농성장을 찾아 황 대표와 대화를 나눈 뒤 취재진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19.11.26/뉴스1 © News1

● ‘황교안식 지르기 정치’ 계속 통할까?

정치 입문 11개월차인 ‘정치 초보’ 황 대표가 측근의 극렬한 반대를 물리치고 강행한 청와대 앞 단식이 정치권의 핵으로 급부상하면서 정치권에선 “황교안식 정치를 다시 봐야 한다”는 얘기도 나왔다. 치밀한 정세분석을 바탕으로 한 정치공학적 전략을 짜고 하는 행동이 아닌 즉흥적인 삭발이나 단식 등 파격적 행동이 예상치 못한 정치적 효과를 불러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황 대표가 9월 ‘조국 사태’가 한창일 때 제1야당 대표 최초로 삭발 카드를 꺼냈을 때도 측근들은 ‘희화화될 수 있다’며 극구 만류했지만 뜻밖에 ‘투블럭 컷 멋쟁이’ 패러디물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돌면서 청년층의 호응을 얻었다. 이번 단식에서 최측근 참모들조차 “명분과 시기가 좋지 않다”며 강력 반대했지만 황 대표가 강행했다. 삭발이나 단식 각 시기마다 고조됐던 황 대표 리더십에 대한 비판은 급속히 사르라 들었다. 당협위원장들이 지속적으로 반대했던 장외집회도 개천절 집회 등을 통해 보수통합의 효과를 보기도 했다.

반면 위기 때마다 삭발, 단식 등 극단적인 카드로만 돌파하는 리더십으론 총선까지의 장기전을 치르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당 관계자는 “‘포스트조국’ 전략이 없었듯 ‘포스트단식’에 대비한 큰 틀의 전략이 전혀 없다는 당내 우려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체계적인 전략과 준비 없이 단식 정국이 끝나면 보수통합과 인적쇄신, 리더십에 대한 공세 등 곪아온 문제들이 다시 고개를 들 것이란 지적이다.

조동주 기자 dj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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