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대화 촉구-엄중 경고’ 사이 고심…당근이냐 채찍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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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년 5월 10일 09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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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이스칸데르' 쏜 듯…발사 거리 늘리며 무력시위
文, 북한에 경고 메시지 보냈지만 대화 기조는 유지
식량 지원→북미 대화 견인 계획 시작부터 난관에
文, 기자단 간담회 연기…공식 일정 없이 2주년 보내

북한의 연이은 미사일 발사로 10일 취임 2주년을 맞은 문재인 대통령의 고심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북한은 9일 오후 4시29분과 4시49분께 평안북도 구성 지역에서 단거리 미사일로 추정되는 발사체 각각 1발씩을 동쪽 방향으로 발사했다. 추정 비행거리는 각각 420여㎞, 270여㎞다. 지난 4일 원산 호도반도 일대에서 신형 전술유도무기와 방사포 등 비행 거리가 70~240㎞인 단거리 발사체를 쏜 지 닷새 만이다. 발사 거리가 더 길어지고 발사체의 종류도 ‘미사일’로 특정됐다.

이날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9일 서부전선방어부대의 화력타격훈련을 지도했다고 보도했다. 북한이 공개한 사진을 보면 이번에 발사한 미사일도 지난번과 같은 ‘북한판 이스칸데르’로 추정된다.

청와대와 정부의 상황 관리에는 어려움이 더욱 커졌다. 당초 우리 정부는 미국의 동의를 받아 대북 인도적 식량 지원을 추진하고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불러낸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북한은 우리의 식량 지원 움직임에도 군사 행동의 수위를 한층 높이면서 강경 노선을 걷고 있다.

일단 문 대통령은 북한이 ‘레드라인’을 넘지는 않았다고 판단하고 대화 기조를 유지하기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미사일 발사에 경고 메시지를 보내면서도 필요 이상으로 북한을 자극하지 않도록 발언 수위를 자제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9일 KBS 대담에 출연해 “북한의 이런 행위가 거듭된다면 대화와 협상 국면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을 북한에 경고하고 싶다”며 “이런 방식으로 북한의 의도를 여러 가지로 해석하게 만들고 우려하게 만드는 등 자칫 대화와 협상 국면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는 이런 선택을 거듭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다만 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남북간 9·19 군사합의 위반은 아니라는 판단을 내리면서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자고 촉구했다.

문 대통령은 “의도가 무엇이든 근본적인 해법은 북미 양국이 (대화의 장에) 빨리 앉는 것이고, 불만이 있다면 대화의 장에서 그 불만을 명확하게 밝히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북한에 대한 인도적 식량 지원 카드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입장도 밝혔다.

문 대통령은 ‘대북 식량지원이 북미 대화를 끌어내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화 카드라는 것 이전에, 북한의 식량난이 최근 한 10년 동안 지금 가장 심각하다”라면서 “두 번째로 그것(대북 식량지원)이 지금의 북미 대화의 교착상태를 조금 열어주는 효과도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일단은 북한에 대한 강한 대응을 자제하며 상황을 관리하고 있지만, 지난번 발사 때보다는 훨씬 부정적인 분위기로 돌아섰다.

트럼프 대통령은 9일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상황을 매우 심각하게 주시하고 있다(We’re looking at it very seriously right now)”고 말했다. 이어 “아무도 (북한 미사일 발사에) 행복하지 않다”며 “우리는 잘 살펴보고 있다. 지켜 볼 것이다. 지켜보겠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북한의 발사체에 대해 “그것들은 보다 작은 미사일들, 단거리 미사일들이었다(They were smaller missiles. Short-range missiles)”라고 규정했다. 다만 “(북한과의) 관계는 계속된다”며 대화의 판을 깨지는 않겠다는 생각을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을 방문 중인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10일 외교부, 통일부 당국자 등과 잇따라 접촉하고 청와대를 방문해 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을 만나 북한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다. 당초 비건 대표는 우리 정부와 대북 식량 지원 문제와 관련한 의견을 조율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북한 미사일 발사라는 변수가 생겨 입장 변화가 있을지 주목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일 문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한국 정부의 대북 인도적 식량 지원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이같은 입장을 유지할지는 미지수다.

취임 2주년을 맞아 분위기 쇄신을 통해 국정 운영의 추진력을 살려가려던 청와대의 계획에도 일단 김이 빠지는 형국이다.

문 대통령은 당초 9일 KBS 대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전화 통화에서 우리의 대북 식량 지원에 매우 긍정적인 태도를 보였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알릴 생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식량 지원을 통해 북미 대화를 촉진하겠다는 구상은 본격 실천을 검토하기도 전에 난관에 봉착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녹지원으로 출입기자 250명을 초대해 간담회를 가질 계획이었지만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행사가 연기됐다. 문 대통령은 특별한 공식 일정 없이 경내에 머물며 취임 2주년을 보낼 것으로 보인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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