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묶은 자산 스스로 푼 김정은… 제재속 南에 더 밀착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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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개성공단 자산동결 해제” 통보
비핵화 협상 최근 지지부진하자 경제협력 통한 새 돌파구 기대


북한이 2년 8개월 만에 개성공단에 있는 우리 자산(약 1조564억 원)에 대한 동결 조치를 풀 수 있다고 나선 것은 향후 남북 경협 속도에 더욱 박차를 가하겠다는 포석이다. 미국이 비핵화 협상이 지지부진하자 대북제재 카드를 계속 쥐고 있는 상황에서 경제건설 총력을 선언한 북한이 우선 기댈 언덕은 한국이라는 것. 문재인 대통령이 ‘개성공단, 금강산관광 우선 정상화’ 내용이 담긴 평양공동선언을 23일 비준한 것도 이런 북한의 움직임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여 당분간 남북 경협은 가속페달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견제도 그만큼 더 세질 듯하다.

○ 김정은, 본인 결정 뒤집으며 ‘자산 동결 해제’

북한이 최근 우리 정부에 개성공단 자산 동결 해제 의사를 밝힌 것은 지난달 평양공동선언 후속 조치의 일환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20일 평양 회담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와 가진 기자회견에서 “금강산 이산가족 상설면회소의 전면 가동을 위해 북측의 몰수 조치를 해제해 달라고 요청했고 김(정은) 위원장도 동의했다”고 밝혔다. 2010년 관광객 박왕자 씨 피살 사건으로 금강산관광지구 내 한국 자산은 몰수 또는 동결됐다. 북한이 금강산지구 면회소의 몰수 및 동결 해제에 동의한 데 이어 이번에 개성공단 자산 동결 해제 의사를 밝힌 것은 의미가 남다르다. 개성공단의 남측 자산 규모(약 1조564억 원)는 금강산 자산(약 4841억 원)의 두 배가 넘는다. 한 대북 소식통은 “금강산 몰수·동결은 김정일의 결정이었지만 개성공단 자산 동결은 김정은이 결정한 것이다. 김정은이 자기 결정을 뒤집은 셈”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북한으로부터 자산 동결 해제 의사를 통보받은 뒤 면밀한 현장 점검에 나서기로 방침을 세웠다. 앞서 여섯 번이나 개성공단 기업인의 현장 방문을 유보했지만 북한이 우리 기업인들의 자산을 인정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만큼 공단 자산의 현재 가치를 정확히 평가해야 하기 때문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이달 말 개성 기업인들의 현장 방문을 북측과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 워싱턴, “한국 경제에 해로울 수도”

남북이 개성공단 자산 동결 해제 카드까지 꺼내며 경협 논의에 속도를 내는 것은 최근 정체된 비핵화 협상과 연계되어 있다는 분석이 많다. 남북이 올해 숨 가쁘게 달려온 비핵화 기조의 속도감을 유지할 방안이 현재로선 경협 외에는 마땅치 않다는 판단이 서로 어느 정도 일치된 결과라는 것이다. 여기에 김 위원장은 북한 주민에게 공단 가동 재개로 경제 회생 가능성을 심어 주고 대외적으로 외부 투자자들의 자산을 보존해준다는 ‘정상 국가’ 이미지를 전할 수 있다. 정부로서도 국내 투자 기업들에 재기의 희망을 주는 한편으로 한반도 경제공동체 같은 장기 과제에 한발 더 나아갈 수 있다.

하지만 차기 북-미 정상회담을 내년으로 미루면서 제재 문단속에 본격적으로 나선 미국에선 이런 남북의 경협 가속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개성공단과 관련한 일련의 조치는 결국 개성공단 재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백태현 통일부 대변인은 이날 개성공단 기업인 방북에 대해 “기업인들의 자산 점검을 위한 것이며 공단 재가동과는 무관하다”고 일단 가능성을 일축했다.

미국에선 벌써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미첼 라이스 전 국무부 정책기획국장은 23일(현지 시간) 미국의소리(VOA)와 한 인터뷰에서 “만약 한국이 대북제재를 해제하고 북한에 일방적인 접근법을 취하기로 결정할 경우 한국 경제에 극히 해로울 것”이라고 말했다. 크리스토퍼 힐 전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는 VOA와의 인터뷰에서 “남북 대화가 비핵화 진전 속도에 비해 이렇게 빠른 건 처음 봤다”고도 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김정은#개성공단#남북경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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