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헌국회 총선 투표율 95.5% 역대최고… 여성의원 ‘0’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7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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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헌법제정 70주년]제주 4·3사건 여파 의원 못뽑아
제헌국회 200명 아닌 198명으로, 평균연령 47세… 86명이 농축산업
주말도 반납하고 제헌 난상토론… 발언 신청 쇄도해 정리에 진땀

임기 2년인 제헌 국회의원 200명을 뽑는 총선거는 1948년 5월 10일 실시됐다. 48개 정당·단체에서 948명이 출마해 4.7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투표율은 95.5%로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는 역대 최고 기록이다. 당시에는 투표를 하려면 유권자 등록을 먼저 해야 했는데 유권자 등록 비율 역시 91.7%로 매우 높았다. 남한 단독정부 수립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미 군정청의 전방위적 노력과 선거에 대한 높은 관심 덕분이었다.

당선자는 200명이 아니라 198명이었다. 이는 제주4·3사건의 여파로 제주도에서 제대로 선거가 치러지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로부터 1년 후 치러진 재선거에서 2명이 충원돼 200명을 채웠다.

제헌 국회 입성자를 정당별로 보면 무소속이 85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승만 지지 세력이었던 대한독립촉성국민회 55명이 뒤를 이었고 한국민주당 29명, 대동청년단 12명, 조선민족청년단 6명 순이었다. 31개 정당·단체는 당선자를 한 명도 내지 못했다.

당선자를 직업별로 보면 당시 사회상을 반영하듯 농·축산업이 86명으로 압도적이었다. 정치인(21명), 회사원(15명) 등이 뒤를 이었다. 20대 국회가 국회의원(138명), 정치인(82명), 교육자(18명), 변호사(16명) 순인 것과 대조적이다. 대학 졸업장을 가진 제헌 국회의원은 91명으로 전체 당선자의 절반이 채 안 됐다.

총선거 때 여성 당선자는 한 명도 없었다. 하지만 이듬해 임영신 의원이 보궐선거에서 당선돼 헌정사상 첫 여성 국회의원으로 기록됐다.

제헌 국회의원들의 평균 연령은 47.1세로 오늘날(20대 국회 평균 55.5세)과 비교하면 여덟 살 이상 차이 나는 ‘젊은 국회’였다. 20대 국회에는 한 명도 없는 20대 의원도 3명이나 있었다. 최고령 의원은 당시 73세였던 이승만 대통령이었다.

제헌 국회는 중앙청(옛 조선총독부 건물)에서 1948년 5월 31일 개원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초대 국회의장으로 뽑혔으나 헌법 제정 사흘 후인 같은 해 7월 20일 국회에서 치른 선거에서 대통령으로 선출되며 의장직을 사임했다. 이에 따라 재임기간 55일의 최단기 국회의장으로 헌정사에 기록됐다. 이 대통령은 국회의장 출신으로 대통령이 된 유일한 인물이기도 하다.

제헌 국회가 처음 심의한 의안은 국회 구성과 국회 준칙에 관한 결의안이었다. 이후 헌법 제정에 속도를 내 40여 일 만인 7월 12일 대한민국 헌법이 국회를 통과했고. 헌법은 그로부터 닷새 후 공포와 동시에 시행됐다. 그리고 한 달 후인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출범했다.

제헌 국회는 의원들이 주말도 반납하고 난상토론을 벌이는 ‘일하는 국회’였다. 365일 중 320일을 일했다는 말이 전해질 정도다. 회의가 열리면 발언 신청이 쇄도해 순서를 정하느라 사회자가 진땀을 흘렸고, 감정이 격화된 탓에 물리적인 충돌을 빚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처우’는 오늘날 국회의원들에 비해 훨씬 열악했다. 198명의 의원 가운데 승용차가 있었던 의원은 10여 명에 불과했고, 나머지 의원들은 경성전기주식회사로부터 짐칸에 덮개를 씌운 트럭 ‘티쓰’를 빌려 출퇴근하거나 전차를 탔다. 지방 출신 의원은 인근 호텔과 공동기숙사에 묵으며 숙식을 해결하는 경우도 있었다.

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

이인혁 인턴기자 중앙대 신문방송학부 4학년
#제헌국회 총선 투표율#역대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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