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STR “환율 합의 포함” 공식발표… 정부 “FTA 연계 거부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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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면합의 의혹 누구 말이 맞나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한미 양국이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환율 문제를 논의했으며 막바지 합의 단계에 와 있다고 공식 발표했다. 환율 문제는 FTA 개정 협상 과정에서 다뤄지지 않았다는 한국 정부의 설명과 정면으로 배치돼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미국 정부의 주장대로라면 한국 정부가 철강 관세를 면제받는 대신에 한미 FTA 협상에서 자동차 시장을 내준 것은 물론이고 환율 문제까지 양보했다는 얘기가 된다. 정부는 이런 사실이 없다며 미국에 공식 항의했다고 밝히면서 진실 공방으로 번지고 있다.

○ USTR “한미 FTA에 환율 합의 있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28일 홈페이지에 공개한 한미 FTA 개정 협상 결과 발표문에 환율 합의에 대한 내용이 포함돼 있다. 한국 정부는 “한미 FTA와 환율은 별개 문제”라며 미 재무부와 USTR에 공식 항의했다고 밝혔다. USTR 홈페이지 캡처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28일 홈페이지에 공개한 한미 FTA 개정 협상 결과 발표문에 환율 합의에 대한 내용이 포함돼 있다. 한국 정부는 “한미 FTA와 환율은 별개 문제”라며 미 재무부와 USTR에 공식 항의했다고 밝혔다. USTR 홈페이지 캡처
USTR는 28일(현지 시간) 홈페이지에 ‘새 무역 정책 및 국가 안보를 위한 한국과의 협상 성과’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게재했다. 보도자료는 △FTA 개정 및 수정 과정 △FTA 개정 협상 결과 △환율 합의 △무역확장법 232조 면제 결과 등 4개 항목으로 구성돼 있다.

이 중 환율 합의(Currency Agreement) 항목이 논란에 불을 지폈다. USTR는 “미 재무부와 한국의 기획재정부가 환율 관련 논의를 하고 있다. 무역과 투자에서 공평한 경쟁 환경을 촉진하기 위해 평가절하와 환율 조작을 금지하는 조항에 대한 합의가 마무리 단계에 와 있다”고 밝혔다. USTR는 “투명성과 책임성을 다하기 위해 전념하겠다는 내용도 포함된다”고 덧붙였다.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USTR 대표도 이날 미 CNBC의 한 대담 프로그램에 출연해 “한국과의 협상은 철강과 환율, 한미 FTA 등 세 분야를 개혁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세 분야의 협상이 함께 타결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 철강 관세 피하려 환율 주권 내줬나

USTR의 발표대로라면 한국이 미국에 환율 주권을 사실상 양보하는 데 동의했음을 뜻한다. 한 나라의 고유 권한인 외환시장 개입을 제한하며 시장 불안정으로 인한 쏠림 현상이 발생해도 이를 제어할 수 있는 수단을 포기하는 셈이다. 1990년대 후반 투기세력의 공격으로 달러가 바닥나 외환위기를 겪었던 한국으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요구다.

미국의 요구로 엔화의 평가절상을 받아들인 ‘플라자합의’로 일본은 ‘잃어버린 10년’에 빠지기도 했다.

○ 정부 “미국에 공식 항의”

전날 외신에서 “한미 FTA 개정에 환율 정책 관련 부가 합의가 포함됐다”는 보도로 홍역을 치른 정부는 이날 USTR 보도자료가 공개되자 발칵 뒤집혔다.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29일 청와대 온라인 방송에서 26일 한미 FTA 개정 협상 결과 발표 때 환율 협의를 언급하지 않았다는 지적과 관련해 “서로 별개 사안이라 언급하지 않은 것”이라고 밝혔다.

기재부도 이날 브리핑을 열어 “한미 FTA 협상과 환율 협의는 전혀 별개”라며 “미국 정부에 한미 FTA 협상 결과 발표 과정에서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킨 데 대해 강력히 항의했다”고 밝혔다. 기재부는 또 “미 백악관 홈페이지에 게재된 보도자료는 한미 간 환율 논의는 FTA와 별개로 이뤄지고 있다고 적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기재부 고위 관계자는 “환율은 양자 협상인 FTA를 통해 다룰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며 “올해 미국이 환율 문제를 FTA와 연계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거부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논란이 다양한 현안을 ‘정부 대 정부’ 협상으로 보는 미국과 개별 부처 차원에서 대응하는 우리나라의 접근 방식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고 있다.

정인교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원더풀 딜이라고 평가한 건 한미 FTA, 철강, 환율 문제가 모두 패키지로 해결됐다는 인식에서 비롯됐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기재부는 현재 미 재무부와 한국 외환시장의 투명성을 높이고 ‘미세 조정’ 내용을 공개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4월 미국의 환율보고서 발표를 앞두고 환율조작국 지정을 피하기 위한 것이다. 한미 간에 환율과 관련한 합의가 있었는지는 다음 달 미국 환율보고서가 발표되면 명확하게 밝혀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건혁 기자 g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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