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핵화 메시지 들고 간 특사단… 곧바로 상대한 김정은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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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특사단 방북]특사단 방북 첫날 김정은 면담-만찬

특사단-김영철 방북 일정 협의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수석 특사로 하는 대북 특사단이 5일 평양에 도착해 숙소인 고방산 초대소에서 김영철 통일전선부장 등 북측 고위급 인사들과 방북 일정 등을 협의하고 있다. 사진은 청와대에서 제공한 현장 사진 두 장을 맞붙인 것이다. 청와대 제공
5일 평양에 도착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등 대북 특사단은 첫 번째 공식 일정으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과 면담 및 만찬을 했다.

청와대는 특사단 출발 전부터 방북 첫날 김정은과의 회동을 성사시키려 조율해왔다. 북한 1인자인 김정은과의 회동을 통해 상호 관심사를 확인하는 등 큰 틀에서의 논의를 마치고 둘째 날 실무 회동에서 구체적인 성과물을 도출한다는 복안이었다. 아직까지 특사단의 첫날 일정은 이 계획대로 가고 있다.

○ 靑의 ‘비핵화’ 의지 알고도 만난 김정은의 속내는

“한반도 비핵화와 진정하고 항구적인 평화를 만들어 나가고자 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확고한 뜻과 의지를 분명히 전달하겠다.”

수석특사인 정 실장은 이날 오전 출국 전 기자들에게 이같이 밝혔다. 이번 특사의 목적이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구체적인 조치와 이를 토대로 한 북-미 대화 주선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 미 백악관 역시 북-미 대화의 전제조건이 비핵화라는 데는 흔들림이 없다. 앞서 문 대통령도 지난달 방남한 김영철 북한 통일전선부장과의 비공개 회동에서 비핵화를 위한 사전 조치 등을 전달한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김정은이 특사단 방북 첫날부터 만난 것은 “비핵화에 대한 논의를 하더라도 일단 피하지 않겠다”는 뜻을 보인 것으로 풀이된다. 청와대 관계자는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 김영철의 방남, 그 이후 청와대와 백악관의 메시지를 보면 이번 방북 특사단이 김정은에게 무슨 말을 꺼낼지는 이미 정해진 상황이었다”며 “그런데도 김정은이 실무자들을 앞세우기보다는 본인이 직접 대화에 나서겠다고 결정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정 실장을 비롯한 특사단은 이날 오후 6시 시작된 접견에서 문 대통령의 친서(親書)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은 친서에 남북 정상회담 제안에 대한 평가, 한반도 평화와 이를 위한 북-미 대화의 필요성 등을 원론적으로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는 이날 접견과 만찬 시간에도 신경을 쓰는 분위기였다. 접견과 만찬이 짧은 경우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김여정 방한 당시 문 대통령과의 회동 및 오찬이 대략 2시간 45분가량 진행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특사단이 김정은을 접촉한 시간도 비슷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김정은의 답변에 달린 한반도의 봄

관건은 김정은이 앞으로 내놓을 카드다. 김정은이 비핵화에 대한 행동 또는 그에 걸맞은 수준의 의지를 내보인다면 향후 논의가 궤도에 오를 수 있다. 하지만 “(미국과) 전제조건적 대화는 없다”는 기존 태도를 고수한다면 한반도의 상황은 오히려 평창 겨울올림픽 이전보다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일단 김정은이 첫 일정으로 특사단을 만나 대화에 나섰다는 점과 고급 휴양시설인 고방산 초대소를 특사단의 숙소로 제공했다는 점은 긍정적인 기류로 읽힌다. 당초 이번 특사단의 숙소는 과거의 전례처럼 백화원 초대소가 유력했었다. 청와대 관계자는 “특사단이 평양에 도착해서야 일정을 확인하는 수준일 줄 알았는데 이렇게 준비했다는 것은 북측도 이번 대화에 어느 정도 기대를 걸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김정은과의 접견 사실이 알려진 뒤 “조심스럽지만 일단 첫날 일정은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으로 보인다”는 분위기였다.

지나친 낙관론을 경계하는 분위기도 있다. 한 외교 소식통은 “우리 관계자들이 김정일과는 여러 차례 만난 적이 있어 협상 스타일 등을 잘 알고 있지만 김정은은 사실상 남북 협상의 데뷔 무대라는 점이 변수”라며 “젊은 김정은이 선뜻 우리의 요구에 응할 것이라고는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만약 김정은이 기존 태도를 고수한다면 문 대통령이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북-미 대화를 위한 ‘중매쟁이’ 역할도 무위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 6일 실무회담 결과로 백악관 설득 나설 듯

청와대는 김정은과의 만찬에서 향후 북-미 대화를 위한 조건에 원칙적 차원의 합의를 이끌어낸 뒤, 6일 실무진 협상에서 백악관에 전달할 북측의 카드를 전달받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북한이 특사단의 방북을 계기로 ‘시간 벌기’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북한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주도하고 있는 유례없는 강력한 대북 압박과 제재에 직면해 있다는 점도 이런 관측에 힘이 실리는 배경이다.

청와대도 이런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번 특사단의 방북으로 뚜렷한 성과물이 도출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며 “이번 방북을 계기로 한국 미국 북한 간의 3각 릴레이 협상을 이어갈 가능성만 있어도 긍정적이다”라고 말했다. 여권 핵심 관계자 역시 “중매가 한 번에 성사되는 경우가 얼마나 되겠느냐”며 “상황에 따라서는 우리 측 당국자들의 추가 방북이 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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