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업 수당 月100만원 줄어” vs “아이 얼굴 볼 시간 늘어”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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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시간 단축 파장]‘주 52시간 근무’ 찬반 분분

“대리운전이나 야간 아르바이트를 알아보자는 동료도 있어요.” 부산에 있는 기계 조립 공장에서 근무하는 박모 씨(31)는 걱정이 앞선다고 했다. 박 씨는 “잔업, 특근을 못 하게 되면 우리 생산라인 직원 수당이 월 100만 원까지 줄어들 것 같아 다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아우성”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중견 의류기업에 다니는 워킹맘 양모 씨(37)는 “기대가 크다”고 했다. 양 씨는 “퇴근하면 이미 아이는 자고 있다. 이렇게 살 수는 없다. 회사 자율에 맡기면 바꿀 수 없다. 법이 바뀌어야 회사도 방법을 고안하고 문화가 바뀐다”고 말했다.

28일 주당 법정근로시간을 현행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직장인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야근이 줄어들어 저녁이 있는 삶이 늘어날 것’이라는 의견부터 ‘당장 임금이 줄어 가계소득에 타격이다’라는 걱정까지 다양했다.

근로시간 단축을 둘러싼 논의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으로까지 옮겨졌다. 근로시간 단축이라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현실은 소득 감소와 사업장 운영 부담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상당했다.

특히 시급으로 임금을 받고 야근과 잔업, 주말 근무 등 특별근무수당으로 가계를 꾸려 온 근로자들의 고민이 컸다. 한 청원인은 “잔업과 특근을 해야 먹고사는 현장, 생산직들은 52시간으로 근로시간이 짧아지면 소득이 줄어 힘들어진다. 부족해진 임금은 누가 책임질 거냐”고 되물었다. 아이 셋을 키우고 있다고 밝힌 한 청원인은 “저희 같은 최저시급 근로자가 연장근무, 특근을 못 하면 그냥 흰밥에 김치만 먹고 살아가라는 말과 다름없다”며 “왜 대기업 기준으로만 정책이 시행되고 중소기업은 생각을 안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 밖에 “근로시간 단축으로 당장 소득이 50만 원 줄어들어 자식들 학원비를 끊게 생겼다” “특근수당 없으면 급여 200만 원도 간신히 받는다. 맞벌이를 영원히 못 놓는다”는 글이 올라왔다.

기업 산하 경영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대기업 사무직은 근무 방식의 변화로 시간당 생산성을 올릴 수 있다. 하지만 대형마트 계산원이나 운전기사 같은 직종은 결국 시간으로 생산성을 따질 수밖에 없어 어쩔 수 없이 임금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중소기업은 비용 걱정이 크다. 한국경제연구원은 근로시간 단축 시행 시 산업계가 26만6000여 명을 추가 고용해야 할 것으로 봤다. 근로시간 단축이 고용창출 효과로 이어진다는 분석이다. 문제는 추가 고용에 약 12조1000억 원이 들고, 이 중 70%가 중소기업에 집중돼 있다는 점이다.

경기 오산시에서 화장품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김모 대표는 “추가 고용을 하면 임금뿐 아니라 교육비, 운영비 등도 추가로 들어가기 때문에 추가 고용이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며 “기존 근로자들의 근무 강도를 높이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법정공휴일 유급 제도가 민간 기업에 확대 적용되는 것도 부담이다. 금융거래 관련 벤처 기업을 운영하는 김모 씨는 “법정공휴일이 연간 15일이면 근로자당 연간 약 150만 원이 더 나간다. 20인 사업장이면 연간 3000만 원이다. 생산성은 그대로인데 1명을 추가 고용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재계는 일자리 형태와 근무 방식이 복잡해지고 있는 만큼 유연한 제도 운영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에 사업 파트너를 두고 있는 대기업 관계자는 “화상으로 정기 회의를 하려면 새벽이나 저녁 늦게 만나야 한다. 이럴 땐 어떻게 근로시간으로 규정해야 하는지 애매하다”며 특수한 상황에 놓인 기업을 아우를 수 있는 법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주 52시간 시행을 이미 시작한 한 대기업 인사팀 관계자는 “내부에서만 일하는 경우는 업무시간 조정이 가능했다. 문제는 대외직이다. 거래처와의 저녁 식사, 해외 거래처 미팅, 주주 담당 등은 기업 자체적으로 업무시간 컨트롤이 불가능해 고민”이라고 말했다.

변종국 bjk@donga.com·김현수 기자
#근로시간 단축#문재인 정부#수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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