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사정기관 총동원하겠다는 문재인의 재벌개혁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월 11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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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어제 “재벌 적폐를 청산해야 국민이 잘사는 나라로 갈 수 있다”며 4대 재벌개혁 방안을 내놓았다. 삼성 현대차 SK LG에 집중된 경제력을 분산해 양극화 문제를 해소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중대 범죄를 저지른 재벌 총수에 대한 사면 제한, 노동자 추천 이사제와 다중대표소송제 등을 통한 경영 견제, 재벌 3세의 승계 제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대기업 전기료 혜택 축소 등이 망라됐다.

 한국 경제가 단기간에 고도성장하는 과정에서 재벌이 기여한 공을 부인할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성장의 과실이 재벌에 집중되면서 소득 불평등이 심해졌고 ‘최순실 게이트’를 통해 정경유착의 고리까지 드러났다. 대·중소기업 간 불공정거래를 해소해 하도급업체에서 일하는 비정규직의 처우를 개선하자는 문 전 대표의 주장은 시장경제의 활력을 높이는 데도 도움이 된다.

 그러나 개혁안의 각론을 보면 무리수가 적지 않다. 검찰 경찰 국세청 감사원 등이 총동원된 ‘을지로위원회’를 구성해 재벌의 갑질을 엄벌하겠다는 것은 공권력으로 기업의 손발을 묶겠다는 권위주의적 발상이다. 재벌과 금융을 분리하는 금산분리 정책을 강화한다면 금융개혁의 핵심인 인터넷은행은 유명무실해진다.

 군사정권 이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재벌개혁을 검토하지 않았던 정부는 없다. 정책 추진 과정에서 기업 활동의 중요성을 뒤늦게 깨닫거나 정경유착의 대가로 개혁 과제를 후순위로 미루기 일쑤였다. 문 전 대표는 재벌의 경제범죄에 대해 무관용의 원칙을 세우겠다고 했지만 2015년 4월 자살한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을 두 차례나 사면했던 정부가 바로 노무현 정부다. 문 전 대표는 백화점식 정책 가운데 실제 입법화할 수 있는 정책을 분명히 밝히고 결과에 책임져야 한다.

 재벌은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외국의 대기업과 달리 총수 일가가 기업을 소유하면서 경영까지 장악하는 한국 특유의 경영 모델이다. 몇몇 기업의 발목을 잡는 개혁안은 정치적으로 통할 수는 있지만 근본 문제를 방치하는 임시방편에 그칠 공산이 크다. 정경유착을 풀려면 이번 최순실 게이트에서 보듯 정권이 기업에 손 벌리는 관행부터 뜯어고쳐야 한다.
#개혁안#군사정권#재벌#문재인#4대 재벌개혁 방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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