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쪽지예산’ 없앤다더니… 올해도 증액 심사 비공개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1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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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안 처리 법정시한 D-6]
10월 “청탁금지법 따라 투명심사”… 간사 협의서 번복 ‘밀실심사’ 재연
상임위별 증액 요청 총 40조 달해 지역구 선심예산 나눠먹기 조짐

 탄핵 정국 속에서 지역구 예산을 챙기려는 의원들의 보이지 않는 전쟁이 치열하다. 특히 올해는 5000억 원대로 추산되는 이른바 ‘최순실 예산’을 삭감해 국회에서 활용할 수 있는 재원이 예년보다 더 많아졌다. 그런 만큼 여야가 ‘짬짜미’로 선심성 지역구 예산을 늘릴 가능성이 더 커졌다는 우려가 나온다.

 25일 국회에 따르면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안조정소위원회는 지난주 마무리한 감액 심사를 통해 정부 예산안에서 2조2800억 원을 깎고, 1조2000억 원을 보류했다. 반면 각 상임위에서 증액을 요청한 사업은 총 4000여 건, 40조 원 규모에 이른다. 사회간접자본(SOC) 건설 예산이 집중된 국회 국토교통위에서만 서해안 복선전철 건설 예산 2817억 원을 포함해 정부안보다 약 2조3000억 원이 증액됐다.

 예산안조정소위는 22일 증액 심사에 착수하며 그간 관행적으로 비공개로 진행해 온 회의를 처음으로 공개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심사에 들어가자 여야 3당 간사로 이뤄진 증액소소위원회를 별도로 구성해 비공개로 전환했다. “효율적인 심사가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여야는 지난달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 시행에 맞춰 예산 심사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동안 예산 심사 때마다 반복된 의원들의 ‘쪽지예산’과 여야 간 지역구 예산 나눠 먹기 구태를 바로잡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다. 하지만 결국 올해도 ‘밀실 심사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기획재정부는 올해부터 예결위 소위 위원 한 명당 예산실 과장 한 명을 붙이는 ‘일대일 의원 마크’를 하지 않고 있다. 정부의 실무 지원이 사실상 ‘쪽지예산’ 등 각종 민원 처리에 악용됐다는 비판을 의식한 조치다. 하지만 기재부가 증액소소위원회의 비공개 심사를 사실상 묵인해 쪽지예산을 없애겠다는 방침이 생색내기에 불과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각에선 기재부가 대(對)국회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깜깜이 심사’를 오히려 선호한다는 시각도 있다. 국회가 예산을 증액하려면 기재부의 최종 승인이 필요하다.

 김상헌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나랏돈이 어떻게 쓰이는지를 국민들에게 알리기 위해서라도 증액 심의를 비롯해 모든 예산 심의 과정을 공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수영 gaea@donga.com·유근형 / 세종=신민기 기자
#쪽지예산#증액#김영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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