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촛불 2만→ 2차 20만→ 3차 100만… 대통령의 영혼없는 사과, 기름 부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1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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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민심에 응답하라/전국에 분노의 함성]중고생 ‘교복부대’… 주부 ‘유모차 부대’
“광화문 간다 하니 부모님도 안말려” “시민의 힘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어”

정치권 향해서도 분통
“與대통령 비호, 野는 직무유기… 국가위기 상황 아직도 정신 못차려”

 “내 손으로 (대통령을) 뽑았기 때문에 속죄하는 마음으로 나왔습니다.”

 “사람들이 왜 화를 내는지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대통령의) 영혼 없는 사과에 화가 났습니다.”

 12일 서울 광화문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촛불을 들고 분노했다. 아빠 손을 잡고 나온 어린아이부터 유모차를 끌고 온 주부, 백발의 노인까지 성별과 나이, 직업, 지역을 가리지 않았다. 그들의 분노에는 후회와 안타까움, 수치심 그리고 박탈감 등 저마다 다른 이유가 있었다.

○ 다양한 사람들, 하나의 목소리

 이날 열린 3차 주말 촛불집회에는 주최 측 추산 100만 명(경찰 추산 26만 명)이 참가했다. 2주 전 청계광장에서 2만 명(경찰 추산 1만2000명)으로 시작된 촛불 물결은 지난주 20만 명(경찰 추산 4만5000명)을 거쳐 이날 100만 명이라는 거대한 바다가 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25일과 이달 4일 대국민 사과를 했음에도 촛불집회 규모는 오히려 커지고 있다. 박 대통령의 사과가 국민들을 이해시키기는커녕 실망과 분노를 안겨줬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두 딸과 함께 촛불집회에 참여한 직장인 박모 씨(38)는 “박 대통령의 ‘영혼 없는 사과’에 화가 났다”면서 “뉴스를 보며 궁금해하는 자녀들에게 이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날 집회에서는 교실을 뛰쳐나온 ‘교복부대’의 분노가 하늘을 찔렀다. 본행사가 시작되기 전인 오후 3시, 교복을 입은 중고교생들은 서울 광화문역 6번 출구 계단을 끊임없이 올라왔다. 중고교생 1000여 명은 출구 앞 빈 공간에 모여 붉은 피켓을 들고 “박근혜는 하야하라”라고 외쳤다. 주변에 몰려든 어른들은 “파이팅” “장하다”라고 소리치며 응원하기도 했다.

 학생들을 광장으로 이끈 건 최순실 씨(60·구속)의 딸 정유라 씨(20)의 이화여대 부정 입학 의혹이었다. 대학 진학을 위해 늦은 밤까지 학원과 독서실을 전전하는 학생들에게 ‘돈 있는 부모 둔 것도 능력’이라는 정 씨의 글은 상대적 박탈감을 안겨줬다. 중학교 2학년 김민수 군(14)은 “앞서 주말 촛불집회 때는 ‘집회에 나가겠다’고 하니 부모님께서 극구 말리셨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버지께서 허락해 주시며 ‘집회에 가서 앞으로 네가 어떻게 한국 사회를 바꾸어 나갈지 생각해 봐라’고 하셨다”고 말했다.

 신한국당 한나라당 새누리당 등 평생 여당만 지지했다는 어르신들도 촛불 대열에 동참했다. 대구에서 올라온 정모 씨(65)가 바로 그렇다. 그는 자신을 새누리당 ‘골수 지지자’라고 밝혔다. 정 씨는 “좌파가 싫어 평생 새누리당을 찍었다. 그런데 이게 말이 되는 상황인가”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나라꼴이 걱정돼서 서울까지 올라왔다”며 “나 같은 보수층도 등을 돌렸다. 이제 대통령이 올바른 판단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촛불집회는 서울 등 국내뿐 아니라 미국, 프랑스 등 세계 10여 개 국가, 30여 개 도시에서도 열렸다. 교민들은 국민과 국가의 대표로 제 역할을 하지 못한 모국의 대통령에 대한 부끄러움을 호소하며 촛불을 들어올렸다.

○ 정치권 직무유기에도 분통

 시민들의 분노는 박 대통령뿐 아니라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정치권으로도 향했다. 초등생 자녀와 함께 참석한 서모 씨(37·여)는 “속상한 마음에 대통령에게 ‘하야하라’고 외쳤지만 야당도 믿음직스러워 보이진 않는다”며 “오늘 집회도 야당이 아닌 시민들이 주도한 것인데 ‘숟가락’ 얹으려는 일부 국회의원들을 보면 속이 상한다”고 말했다.

 분노의 원인은 국정 공백 상태에도 제 살길 찾기 급급한 여당과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야당에 대한 실망감에도 있었다. 조동환 씨(65)는 “새누리당은 이번 사태가 터진 뒤에도 대통령에게 쓴소리를 하기는커녕 비호하기에만 바빴고 야당도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며 “이렇게 대규모 집회가 열리게 된 건 정치권 탓도 크다”고 주장했다.

 한편 매주 토요일 열리는 대규모 촛불집회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19일에는 서울을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 개최되고 26일에는 서울에서 다시 대규모로 열린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번 집회를 통해 시민들은 대통령과 정치권에 ‘공’을 던진 것”이라며 “대통령이 얼마나 책임지는 자세를 보이는지, 정치권이 얼마나 정국을 잘 수습하는지에 따라 다음 집회 때 표출될 민심의 크기가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전주영 aimhigh@donga.com·홍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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