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핀란드化’ 버린 핀란드 보면서도 중국 눈치만 보는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26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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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시대에 미국과 소련 사이에서 엄격한 군사적 중립을 표방했던 핀란드가 올가을 미국 대통령선거 전에 미국과 방위협정을 체결한다. 24일에는 자국 영토에서 처음으로 미국과 가상 적군의 공습에 맞서는 연합 공군훈련을 실시했다. 국경을 맞댄 러시아의 눈치를 보느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도 가입하지 않았던 핀란드가 2014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크림 반도 병합 이후 거세진 안보 위협에 미국의 방위우산을 선택한 것이다.

인접 강대국의 국가 이익에 맞춰 자국 외교와 국내 정책까지 양보하는 약소국의 생존법을 ‘핀란드화(Finlandization)’라고 한다. 러시아 지배를 받았던 핀란드는 1948년 소련과 우호협력원조조약을 통해 소련의 적대 국가, 즉 서방에 영토를 제공하지 않는 조건으로 정치적 자율성을 지켜왔다. 쉽게 말해 ‘러시아 사대(事大)’ 속에 살았던 핀란드가 안보 상황 급변에 따라 마침내 핀란드화를 극복하고 미국과 안보협력에 나선 것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 크다.

핀란드가 미국과 연합훈련을 한 24일은 한중 수교 24주년이었다. 한중은 경제 분야를 중심으로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까지 발전했지만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한반도 배치를 둘러싸고 중국은 대국(大國)을 자처하며 한국에 핀란드화를 요구하고 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런민일보가 “한국의 지도자는 신중하게 문제를 처리하라”며 내정간섭을 한 데 이어 25일자 런민왕 한국어판은 “중국은 이번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통해 한국 대통령에게 (사드에 관해) 충분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며 “한국은 중국과 협력해야만 문제를 해결하는 최적의 출구를 찾을 수 있고 단순히 미국 전차에 얽매이는 것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압박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이 최근 더불어민주당 특강에서 사드 배치 철회를 주장하면서 미국이 경제보복을 할 경우 중국과 손잡으면 “굶어 죽을 걱정이 없다”고 한 것은 내부적 핀란드화를 드러낸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도 “아시아태평양 지역은 중국과 미국을 모두 수용할 만큼 넓다”는 말로 미중 패권전쟁에서 사실상 중국의 편에 섰다는 지적을 받았다. 그런데도 중국은 북한의 핵을 포기시키거나 한국이 주도하는 자유민주주의 통일에 동의하는 모습은 결코 보인 바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우리의 운명이 강대국들의 역학관계에 의해 결정될 것이라는 피해의식과 비관적 사고를 떨쳐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 역시 한미동맹보다는 미중 사이에서 눈치 보기 외교를 해온 것이 사실이다. 이제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에 이어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시험발사로 북을 일방적으로 감싸온 중국의 민낯이 또 한 번 드러났다. 지정학적 격변의 순간, 누구의 손을 잡아야 안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지는 자명하다. 아직도 중국에 환상이 있다면 핀란드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핀란드#미국#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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