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홍수영]친박-비박이라는 말, 국민도 듣고 싶지 않습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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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영·정치부
홍수영·정치부
“앞으로 ‘친박(친박근혜)-비박(비박근혜)’이라는 표현을 쓰는 언론은 나와 소통하기 어려울 거다.”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는 22일 동아일보를 비롯한 언론과의 통화에서 “왜 대통령의 라스트 네임(성)으로 그룹 이름을 짓느냐. 비박이라고 하면 대통령을 ‘비토’한다는 뜻으로 잘못 인식될 수도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정 원내대표는 “분류할 필요가 있다면 차라리 ‘주류-비주류’라고 써야 한다”며 “친박-비박 표현은 옳지 않고 대통령도 굉장히 부담스러워한다고 지난번에 얘기하지 않았느냐”고 했다.

새누리당 내홍을 ‘계파 프레임’으로만 보지 말아 달라는 정 원내대표의 주문은 친박-비박 사이에 끼어 옴짝달싹 못하고 있는 그의 처지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또 자신은 논란이 되고 있는 비상대책위원회나 혁신위원회 구성에서 계파의 이익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음을 항변하려는 의도로도 보인다.

언론이 모든 사안을 친박-비박 프레임으로만 재단하려 한다면 그 또한 지적을 받을 여지가 없지 않다. 그렇다 해도 ‘친박-비박 표현을 쓰는 언론과는 소통하지 않겠다’는 엄포(?)는 새누리당의 실상과는 동떨어진 인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친박의 연원은 2007년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 대선후보 경선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물론 당시엔 친박 대 친이(친이명박) 구도였다. 2009년 1월 여당 출입을 시작하며 의원들로부터 들은 첫 인사도 “(담당이) 친박이냐, 친이냐”였다.

그로부터 10년 가까이 지났지만 새누리당의 계파 싸움은 달라진 게 없다. 오히려 계파는 더 강고해졌다. 오죽하면 ‘진박’이라는 용어까지 나왔을까. 물론 친이는 소멸됐지만 그 자리를 ‘비박’이 대체했다.

한 친박 의원은 “언론이 친박을 폐족(廢族)하려 한다”고 억울해한다. 억울해할 게 아니라 진짜 폐족 선언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친박-비박’이란 표현은 언론도 더 이상 쓰고 싶지 않다. 그러나 친박-비박 표현을 쓰지 않는다고 해서 계파가 사라질 것 같지 않다는 게 기자의 고민이다.

홍수영 정치부 gaea@donga.com
#친박#비박#기자의 눈#새누리당#언론#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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