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박제균]ARS 여론조사의 덫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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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선거철. 이틀에 한 번꼴로 전화가 걸려온다. “안녕하십니까. 4월 실시되는 20대 총선과 관련해….” 기계음이라면 고민할 필요 없다. 가차 없이 끊는다. 사람 목소리면 인내가 필요하다. 전화 면접원이 여론조사 개요를 설명한 뒤 “3분(또는 5분) 정도 시간을 내달라”고 요청하면 “지금 회의 중”이라든가 하면서 가급적 예의를 갖추게 된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는 지난해 12월 28∼30일 19세 이상 남녀 1634명을 표본으로 정당 지지율 정례 조사를 실시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자동응답시스템(ARS)의 응답률은 전화면접조사에 비해 현저히 낮았다. 무선 ARS(35%) 응답률이 3.8%로 가장 낮았고 유선 ARS(35%) 5.5%, 유선 전화면접(15%) 26.1%, 무선 전화면접(15%) 34% 순이었다. 리서치앤리서치 배종찬 본부장은 “응답률이 지나치게 낮으면 모집단의 특성을 올바로 측정하지 못해 대표성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29일 새누리당 대구 동을 이재만 예비후보 측에서 생산한 A4용지 1장짜리 ‘여론조사 행동요령 지침서’가 공개돼 파문이 일었다. 20, 30대가 ARS 응답률이 낮은 점을 겨냥해 ‘여론조사 응답버튼을 누를 때 나이를 물어보면 20, 30대를 꼭 선택하시라’는 지침을 이 문건은 담고 있다. 응답률이 높은 40대 이상이 20, 30대인 양 답변하면 전체 여론조사 반영률이 높아진다는 점을 노린 것. ARS 조사의 경우 연령대 식별이 어렵기 때문이다.

▷11일 주간동아에 따르면 20대 총선 선거운동원들 사이에서 ‘여론조사 때 지지자 500명을 모으면 경선 통과 가능성이 50%를 넘고, 1000명을 모으면 본선 진출이 확정적’이라는 얘기까지 나돈다. 비정상 여론조사 경선 방식이 비정상 선거운동을 낳고 있다. 여야는 지난해 12월 31일 휴대전화 가입자의 거주지와 연령을 파악할 수 있는 안심번호제 도입을 뼈대로 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그럼에도 ARS 조사 방식이 사라지지 않는 한 여론조작의 유혹은 사그라지지 않을 것 같다.

박제균 논설위원 phark@donga.com
#선거#여론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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