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골메뉴 ‘병진정책’ 쏙 뺀채… 경제강국 목청 높인 김정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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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신년사]
집권 5년차 체제 안정화에 방점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가 1일 신년사를 낭독하고 있다. 이날 오후 조선중앙TV가 녹화중계한 방송에서 김정은은 안경을 쓴 채 “북남(남북) 대화와 관계 개선을 위해 적극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진 출처 노동신문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가 1일 신년사를 낭독하고 있다. 이날 오후 조선중앙TV가 녹화중계한 방송에서 김정은은 안경을 쓴 채 “북남(남북) 대화와 관계 개선을 위해 적극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진 출처 노동신문
북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1일 신년사 메시지의 핵심은 5월 제7차 노동당 대회의 성공과 경제 강국 건설에 맞춰져 있다. 당을 전면에 내세워 북한 주민들을 쥐어짜는 ‘김정은식 총력전’을 벌이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집권 5년 차를 맞은 김정은의 최대 과제는 국제적 고립과 경제난을 벗어나 체제를 안정시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내건 슬로건은 인민생활 향상과 경제 건설. 김정은은 “당 7차 대회가 열리는 올해에 강성국가 건설의 최전성기를 열어나가기 위한 투쟁에 나서야 한다”는 전투적 구호까지 제시했다. 정영태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김일성 시대의 천리마운동과 성격이 비슷하다”고 말했다. 천리마운동은 1950년대 생산을 증대하기 위해 북한이 주민들을 총동원한 방식이다.

○ 주민 총동원 강조하며 시장경제적 개혁 시사


김정은은 신년사에서 군사 정치 사상 문제에 앞서 경제 강국 건설을 가장 먼저 내세웠다. 구체적으로 전력 석탄 금속공업 철도운수의 4개 부문에서 성과를 내라고 다그쳤다. 새롭게 등장한 ‘자강력제일주의’는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는 상황에서 외부 의존 대신 내부 경제건설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노동당에 대한 언급은 60회로 2012년 김정은 체제 출범 이후 가장 많았다. 당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사회주의 집단주의 목표를 강조한 것은 김정일 시대 권력의 핵심이던 군부 대신 자신의 사람으로 당을 채워 통제력을 강화하려는 뜻이기도 하다. 김정은이 ‘젊은 노동당, 친위 노동당’을 강조한 것도 이런 맥락으로 풀이된다. 김정은이 “5대 교양 사상을 혁명의 원동력으로 삼자”고 사상 단속을 강조한 것은 김일성의 유일사상 10대 원칙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면서도 “우리(북한)식 경제관리 방법을 전면적으로 확립하기 위한 사업을 적극 조직 전개해 우월성과 생활력이 높이 발휘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2012년 ‘6·28 경제관리 개선조치’ 등을 가리킨다. 농업 수확량 일부를 농민에게 분배하고 공장 기업소가 생산 판매 분배를 독자적으로 결정하는 시장경제적 요소가 포함된 조치이다. 정부 관계자는 “7차 당대회에서 김정은이 시장경제 개혁 조치를 공식화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라고 말했다.

○ 한국 비난하면서도 남북대화·북-중관계 의식

북한은 지난해 12월 남북 차관급 당국 회담에서 금강산관광 우선 재개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회담을 결렬시켰다. 하지만 김정은은 신년사에서 8·25 합의 정신을 거론하고 남북관계 개선에 적극 노력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한국에 손을 내밀 필요성이 있다는 것. 국제적 고립과 재정 부족에 가로막힌 현실을 타개하려는 의도가 대남·대외 메시지에 담겨 있다고 정부 관계자들은 분석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북한이 8·25 합의를 비롯한 남북합의를 존중하고 남북관계 개선의 길을 열어나가겠다고 밝힌 만큼 남북 간 신뢰를 통해 한반도 평화통일 시대를 위해 함께 노력할 것을 촉구한다”고 공식 반응을 내놓았다.

김정은은 “체제통일 시도, 통일외교 ‘구걸’, 한미 군사훈련을 중단하라”며 남북 정상회담을 제안했던 지난해보다 대남 비난 수위를 높이기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 이후 강조한 통일외교에 적대감을 나타낸 것으로 풀이된다.

김정은은 핵무기 개발이나 핵-경제 병진노선을 직접 언급하지 않고 미국과의 평화협정 체결에 무게를 뒀다. 지난해 10월 노동당 창건 70주년 기념행사를 가리켜 “핵폭탄을 터뜨리고 인공지구위성을 쏴 올린 것보다 더 큰 위력”이라고 주장했을 뿐이다. 중국과 국제사회를 의식해 핵실험과 장거리로켓 발사를 하지 않았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12월 김정은이 수소폭탄을 언급한 이후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예정됐던 모란봉악단의 공연 무산과 북-중 관계 개선의 기회를 놓친 점도 염두에 뒀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김정은이 “우리식의 다양한 군사적 타격 수단들을 더 많이 개발·생산해야 한다”고 주장할 때 북한 방송은 지난해 5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시험발사 장면의 사진을 내보냈다. SLBM은 핵탄두를 장착할 수 있는 중장거리 탄도미사일. 다양한 신무기 개발에 주력할 것임을 예고한 것이기도 하다.

○ 뿔테 안경 쓴 김정은

김정은은 평소에 쓰던 금속테가 아닌 뿔테 안경을 쓰고 신년사를 낭독하는 등 과거에 시도하지 않던 ‘이미지 메이킹’에 나섰다. 뿔테 안경을 쓰면 인상을 부드럽게 만드는 것은 물론이고 과거 김일성 주석을 떠올리게 하는 효과도 있다.

자세도 바뀌었다. 김정은은 지난해 10월 노동당 창건 70주년 열병식 당시 단상에 두 팔을 올린 채 엉덩이를 뒤로 뺀 상태에서 25분간 연설문을 읽었다. 하지만 1일엔 꼿꼿한 자세로 29분간 신년사를 읽었다. 목소리도 안정적이었다. 현장 실황인 열병식과 달리 신년사는 녹화방송 형식이어서 김정은이 속도를 조절해가며 다시 읽었을 가능성도 있다.

이날 북한 신년사 방송은 과거 오전 9시를 전후했던 것보다 늦어진 낮 12시(한국 시간 낮 12시 반)에 진행됐다. 지난해 12월 29일 북한의 대남총책이던 김양건 노동당 비서가 갑자기 사망하는 바람에 조정됐을 것이라는 관측이 있지만 확실치는 않다.

윤완준 zeitung@donga.com·조숭호 기자
#병진정책#김정은#신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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