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현실에 맞는 ‘상고심 다이어트’ 대안은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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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告허가제 효과적이지만 반감 커… 3심 제한않는 상고법원 신설 유력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 청사 용지에는 ‘사연이 있는’ 건물 하나가 있다. 2007년 준공된 서울고법 별관 건물로 건설 초기만 해도 대법원과 별도로 상고심(3심) 사건을 전담해서 다룰 ‘고등법원 상고재판부’를 염두에 둔 것이었다. 하지만 17대 국회에서 ‘대법원과 고법 상고부가 각기 다룰 사건을 나눌 객관적 기준이 무엇이냐’라는 논란에 부딪히면서 무산됐다. 결국 이 별관 건물은 현재 서울고법 행정재판부 청사로 사용되고 있다.

‘상고심 재판은 대법원이 맡는 게 능사인가’라는 질문은 수십 년 동안 풀리지 않는 고민거리다. 세계 각국도 자국 실정에 맞게 여러 형태로 상고심 제도를 운영하다 보니 ‘유일한 최선의 정답’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한 해 3만6000건이 넘는 사건이 대법원으로 몰려들었고 이제는 더이상 미루기 어려운 숙제가 됐다.

국민들은 대법원에 상고심이 몰려 사건 처리가 늦어지고 충실한 심리를 받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해야 할 필요성에는 공감하고 있다. 대체로 △대법관 증원 △상고심 사건을 대법원이 취사선택하는 ‘상고허가제’ △상고심 전담 법원을 별도로 설치하는 ‘상고법원’ 등이 대안으로 거론된다.

상고 남발을 막는 가장 강력한 방안은 미국 영국 독일 등 선진국에서 운영하는 상고허가제다. 이 제도는 국내에서도 1981∼1990년 9년 3개월간 운영됐으나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한다”는 반발로 폐지됐다. ‘대법원 판단을 꼭 받아보겠다’는 요구가 강한 국민 정서를 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최종심은 최고법원인 대법원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그만큼 강하다.

현재 12명인 대법관(법원행정처장 제외) 수를 대폭 늘리는 방안도 거론된다. 하지만 이는 근본적 해결책이 아닌 ‘언 발에 오줌 누기’에 불과하다는 지적에 힘이 실린다. 상고 남발의 근본 원인은 하급심에 대한 불만족에서 비롯되는데 대법관을 증원하면 우수한 판사들이 1, 2심이 아닌 대법원으로 몰리면서 하급심을 오히려 약화시킬 소지가 크다는 것이다. 대법원에 소(小)재판부만 늘어나 판결이 서로 엇갈리고 전원합의체 기능이 무력화되면 사회 전체의 근본적 가치선택에 대한 판단을 내리는 최고법원으로서 역할도 할 수 없다. 박시환 전 대법관은 “전원합의체 기능은 최고법원이라는 대법원이 가진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며 “대법관 수를 늘리는 것은 전원합의체 활성화에도 도움이 되지 않으며 하급심을 강화하려는 사법개혁의 취지에도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대법관에 버금가는 풍부한 경륜과 실력을 갖춘 고위 법관들로 별도 법원을 만들어 상고심 재판을 전담시키는 ‘상고법원’을 두는 방안이 유력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3심 재판을 받을 기회를 보장하면서도 최고법원으로서의 역할도 제대로 하는 일종의 절충안이다.

신동진 shine@donga.com·장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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