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전남→경북… 어느 국정원 직원의 ‘출생지 세탁’ 왜?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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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원장 지시받은 인사팀장… 승진자 영호남 비율 맞추려 변경
새 원장 “기록조작” 해임하자 소송, 대법 “처분 지나쳐”… 4년만에 승소

2007년 12월 국가정보원 인사팀장 김모 씨(53)는 당시 김만복 국정원장으로부터 “대통령 선거가 열리는 19일 이전에 모든 인사를 끝내라. 4급 승진은 영남과 호남 출신을 각각 40%와 20%대 비율로 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국정원 직원 A 씨는 호적등본과 신원진술서상 출생지는 경북으로 돼 있었고, 이 때문에 영남 출신 승진비율 제한에 걸려 승진이 어려웠다. 그러나 그는 김 씨에게 “실제 출생지가 전남 해남”이라고 말했다. 김 씨는 이를 김 전 원장에게 보고해 A 씨는 4급 승진에 성공했다. 승진 며칠 뒤에 A 씨의 출생지는 다시 경북으로 원위치됐다. 국정원장과 기조실장이 김 씨에게 ‘인사자료의 일관성 유지를 위해 호적상 출생지를 기준으로 재정리하라’고 지시했기 때문이다.

2009년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취임한 뒤 A 씨의 인사기록 변경 사실이 문제가 돼 김 씨는 2010년 3월 해임 처분을 받았다. 인사기록을 무단 변경하고 국정원 복무규율 등 국정원직원법을 위반했다는 이유였다. 이에 김 씨는 소송을 냈다.

법정 공방의 쟁점은 A 씨의 출생지를 ‘전남 해남으로 볼 수 있느냐’였다. A 씨는 국정원 자체 조사 때 “아버지가 월남전 파병을 간 사이 어머니가 친정인 전남 해남에서 나를 낳았다”고 했다. 하지만 1심 재판에서 “어머니는 출산 전후 3개월간 전남 해남군에 머무른 게 맞지만 당시 아버지가 월남에 파병을 간 건 아니다”라고 진술했다.

1심 재판부는 “A 씨의 진술 외에 실제 출생지가 전남이라는 사실을 입증할 자료가 없다”며 해임 처분이 적법하다고 판결했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해임 처분이 지나치다”며 김 씨의 손을 들어줬다.

이어 대법원은 14일 “김 씨의 행동은 출신 지역이 편중된 승진인사를 개선하려던 국정원장의 지침에 따른 것이며 출생지 변경이 허위라고 볼 수도 없어 해임 처분은 지나치다”며 항소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번 판결에 대해 김 전 원장은 “인사팀장은 복직되더라도 계급정년이 지나 그만둬야 할 형편인 만큼 억울함이 없도록 해달라고 신임 이병기 국정원장 후보자에게 요청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고 김대중 전 대통령 재임 당시 출신지를 변경한 국정원 직원이 6명이나 된다. 이 중에는 이름만 말하면 누군지 알 만한 사람도 있다”는 말도 했다.

장관석 기자 jks@donga.com
#국정원#출생지 세탁#인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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