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벌거숭이 산” 한탄… 南 ‘그린데탕트’로 지원 손길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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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벗은 북한 땅을 푸르게]
[준비해야 하나 된다]<下>접점 찾는 南北 산림협력

“지금 우리나라에는 벌거숭이가 된 산이 많다. 지방에 가보면 ‘산림애호’ ‘청년림’이라고 써 붙인 산들 가운데도 나무가 거의 없는 산이 적지 않다.”

2012년 4월 27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는 ‘국토관리 사업에서 혁명적 전환을 가져올 데 대하여’라는 담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무(無)오류를 강조하는 북한 체제에서 산림 황폐의 현실을 이처럼 적나라하게 인정한 전례가 없다고 북한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김정은은 “땔감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나무를 아무리 많이 심어도 그것을 망탕(마구) 찍어 땔감으로 쓰기 때문에 산림을 보호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산림 조성과 보호관리사업을 혁신해 10년 안으로 벌거숭이산을 모두 수림화(산림녹화)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 당의 확고한 결심이며 의지”라고 강조했다.

불확실한 남북관계 상황에서도 ‘헐벗은 북한 땅을 푸르게’ 만드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는 기대는 북한 당국의 이런 산림녹화 의지가 어느 때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 역시 ‘그린 데탕트’(녹색 화해협력)에 대한 집념이 남다르다.

○ 북한의 산림 복원 의지, 결실로 이어질까

김정은의 지시로 북한 당국은 현재 ‘산림 복원 10개년’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목표는 2023년까지 무입목지 168만 ha에 총 65억 그루의 나무를 심는 것이다. 단순히 나무를 심는 것에 그치지 않고 소득대책과 환경보전, 주민 생활 개선을 동시에 추구한다는 계획이다. 이와 관련해 19일 창립한 아시아녹화기구(GAO)도 북한의 조림이 성공하려면 식량과 땔감 대책까지 포함한 ‘임농(林農)복합경영’ 방식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올해 들어 북한 당국은 ‘나무 심기’의 중요성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1월 1일 신년사는 “나무 심기를 전 군중적 운동으로 힘 있게 벌여 모든 산에 푸른 숲이 우거지게 해야 한다”고 독려했다. 2월 28일 열린 국토환경보호부문 일꾼대회에서 박봉주 총리를 비롯한 참석자들은 “조국 산천을 훌륭히 변모시켜 가자”고 결의했다. ‘식수절’(북한 식목일)인 3월 2일 노동신문은 “애국의 마음은 나무 한 그루라도 제 손으로 심고 가꿀 때 움터난다”고 밝혔다. 이튿날(3일) 북한 매체에는 직접 나무를 심는 김정은 제1비서의 사진이 대대적으로 실렸다.

나무 심기가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사후관리책임제가 확립되기 위해서는 행정력을 가진 당국의 의지가 중요하다는 점에서 이런 변화는 고무적이다. 1990년대 후반만 해도 북한 당국자들은 평양의 민둥산을 보고 충격을 받은 한국 인사들에게 오히려 “외국인들도 우리의 효율적인 국토 관리에 감탄한다”고 허세 부리기에 바빴다. 그런 북한이 달라지고 있다.

박근혜 정부도 남북의 산림 협력 필요성을 잇달아 강조하며 의욕을 보이고 있다. 2월 6일 통일부는 새해 업무보고에서 “남북 동질성 회복과 호혜 협력을 추진하며 남북 공동 영농과 시범 조림으로 ‘그린 데탕트’ 발전을 앞당기겠다”고 밝혔다. 산림청도 같은 달 24일 “통일시대에 대비한 북한 산림 복구를 준비하겠으며 민간기구와 공조해 시범 조림·병해충 방제를 추진하겠다”고 박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같은 달 28일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한 조찬 강연에서 “국제기구를 활용해 남북한 ‘그린 데탕트’ 실현을 앞당기겠다”고 말했다. 윤 장관은 한국 정부가 주도해 만든 녹색기후기금(GCF), 글로벌녹색성장연구소(GGGI)를 협력 가능한 국제기구의 사례로 들었다.

○ 한국의 ‘그린 데탕트’ 구상, 북한이 화답할까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 박 대통령도 농업과 축산업을 예로 들며 “남북 주민 간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건전한 민간교류를 확대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런 ‘그린 데탕트’는 정부 출범 전부터 구상됐던 것이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지난해 2월 ‘행복한 통일시대의 기반 구축’을 최상위 국정목표로 설정하고 ‘그린 데탕트’를 통한 남북 환경공동체 건설을 제안한 바 있다.

남북 관계가 극도로 얼어붙었던 이명박 정부에서도 나무 심기 협력은 성사 직전까지 갔었다. 소설가 복거일 씨와 문정인 연세대 교수가 2010년 제의 형식으로 남북 산림협력 필요성을 각각 언론에 기고한 뒤 북한에서 연락이 왔다. ‘대남일꾼’의 핵심 책임자인 원동연 통일전선부 부부장이 고건 기후변화센터 명예이사장을 만나자는 거였다. 하지만 청와대의 허락이 없어 만남은 성사되지 못했다. 당시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한 인사는 “당시 만남이 성사됐더라면 남북관계가 지금과는 모습이 달라졌겠지만 그때는 대북 강경파를 설득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올해 박근혜 정부는 통일준비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실질적인 남북 격차 해소에 나설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3월 말 국빈 방문하는 독일에서 박 대통령이 남북관계에 대한 새로운 구상을 제시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라 한국 정부가 이념 갈등의 요소가 적은 북한 나무 심기를 대북정책 전환의 계기로 삼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여권 관계자는 “북한도 주민의 삶의 질 개선에 산림녹화가 절실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도발로 분위기를 그르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숭호 기자 shcho@donga.com
#북한#산림#그린 데탕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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