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관계 주역들에게 듣는다<中>외교분야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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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동맹 60주년]

《 한미동맹의 뿌리가 안보(국방)라면 외교는 줄기다. 한미 양국의 외교 협력이 동맹의 양적, 질적인 발전을 이끌어 왔기 때문이다. 안보와 외교는 뿌리와 줄기처럼 불가분의 관계이기도 하다. 한미 외교의 최전선에 섰던 한승주 고려대 명예교수와 토머스 허바드 코리아소사이어티 이사장에게 한미동맹의 성과와 전망을 들었다. 》

▼ “민주-시장경제 가치 공유하며 상호간 국익 창출에 도움줘야” ▼

■ 한승주 고려대 명예교수


“북한의 재침을 막았고 한국의 경제 발전, 민주화를 이뤘으며 동북아 평화 안정에도 기여했습니다.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막지 못하고 민주화 개방으로 이끌지 못해 감점을 하더라도 (한미동맹 성적표는) 최소한 B+는 됩니다.”

한승주 고려대 명예교수는 1일 60주년을 맞은 한미동맹에 대해 이런 성적표를 매겼다. 교수답게 점수는 냉정하게 매겼지만 “미국의 다자동맹 가운데 가장 성공한 것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라면 양자는 단연 한미동맹이 가장 성공적”이라고 말했다.

한 명예교수는 동맹 40주년이 되는 1993년 외무부 장관에 취임했고 50주년인 2003년 주미 대사로 부임했다. 10년 단위로 한미 외교 현장의 최선두, 최전선에서 일할 기회를 가졌던 셈이다.

그는 소련이 해체되고 남북관계가 개선되면서 한미동맹의 필요성 인식이 낮아져 보인 적도 있지만 실제로 동맹은 지속적으로 강화돼 왔다고 말했다. 심지어 ‘반미면 어떠냐?’고 했던 노무현 정부도 말과 달리 행동으로는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인정했다고 덧붙였다. 미국 당국자는 당시 주미 대사였던 그에게 “노 대통령의 언사는 과격하나 행동은 믿을 만하다(his deeds are better than his words)”고 평가했다고 한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인정, 이라크 파병,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노무현 정부에서 추진된 것도 한미동맹 강화가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한미동맹은 한평생(60년)을 같이했지만 양국 외교 현안에서는 여전히 이견이 적지 않다. 각자의 국익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농축·재처리 권한 부여를 놓고 갈등을 빚고 있는 한미 원자력 협력 협정이 대표적이다. 미국이 일본에는 농축·재처리를 허용한 것을 놓고 ‘한미동맹이 미일동맹보다 못한가’라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하지만 한 명예교수는 “한미 이슈는 어느 일방이 독식하는 양자택일의 문제는 아니며 ‘동맹이 그것도 못 들어주느냐’고 마음 상할 필요도 없다”며 “서로 협의를 통해 명분을 만들고 합의할 여지가 얼마든지 있다”고 말했다. 미국이 한국을 일본보다 차별하는 건 잘못된 것이지만 한국이 핵무기 개발 전용 의사가 없음을 설득하면 접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한 명예교수는 내다봤다.

한국 사회 일각의 반미 감정에 대해 한 명예교수는 “영어에도 ‘너무 친해지면 혐오감이 생긴다’는 표현이 있다”며 “한미 당국 모두 과거 사례에서 교훈을 많이 얻어 ‘효순·미선 사건’처럼 반미 감정이 분출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북핵 문제는 한미동맹 앞에 놓인 지난한 과제라고 말했다. 그는 “외무부 장관 취임 직후 1차 북핵 위기가 발발하자 ‘미국에 가서 북한을 폭격하지 말게 설득하라’고 요구하던 여론이 1994년 북-미 제네바합의가 체결되자 ‘왜 북한에 유화적으로 대하나’라며 비난으로 돌아섰다”고 회고했다. 이어 “최근 미국에서는 북핵 담당자들이 열심히 할수록 손해라는 인식이, 한국에서는 핵실험 때만 반짝 관심이 높아졌다가 곧바로 잦아드는 피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는 “한국과 미국의 이해관계가 100% 같을 수 없고 서로의 관심사와 필요성이 일치하지 않다 보니 어려움이 생길 수 있지만 그 시각차가 근본적인 것은 아니다”며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는 양국 정부의 보조가 잘 맞춰져 오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 명예교수는 한미동맹의 미래에 대해 “한국과 미국은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와 같은 가치를 공유하면서 상호 국익도 키워 나가는 ‘가치와 이익의 균형’을 통해 더욱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가치 공유가 없는 동맹이 ‘속빈 강정’이라면 상호 국익을 창출하지 못하는 동맹은 존재 가치가 없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조숭호 기자 shcho@donga.com   
▼ “효순·미선사건 이후 反美 이해… 미군기지 이전 추진하게 된 것” ▼

■ 토머스 허바드 前 주한 미대사

“한미동맹은 저절로 강화되지 않는다. 끊임없이 자양분을 공급해야 한다.”

토머스 허바드 전 주한 미국대사(70)는 지난달 27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미동맹을 굳건히 지키기 위해서는 양국의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허바드 전 대사는 한미관계가 그다지 원만하지 못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 주한 미국대사를 지냈다. 2001∼2004년 그의 대사 재직 기간에 한국에서는 ‘효순·미선 사건’으로 반미(反美) 감정이 분출됐다.

허바드 전 대사는 “그 비극적 사건을 통해 나를 비롯한 미국의 많은 정책 결정자들은 한국인들이 미국에 대해 느끼는 복잡한 감정을 깨닫게 됐다”고 회고했다. 한미동맹은 영원할 것이라는 자기만족감에서 벗어나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는 것이다. 그는 “효순·미선 사건 이후 주한미군 기지의 한강 이남 이전 계획이 본격 추진되고 해외 주둔 미군의 지역 이해 교육이 강화되는 등 미국은 배운 것이 많다”고 말했다.

그가 대사로서 겪은 김 전 대통령과 노 전 대통령의 대미(對美)관에는 차이가 있다. 일부에서 김 전 대통령을 반미 성향으로 보기도 하지만 확고한 대미 공조를 유지했고 미국과의 관계도 좋았다는 것이 허바드 대사의 평가다. 반면 노 전 대통령은 “항상 미국을 지지했다고 할 수 없다”고 둘러 말해 당시 갈등 요소가 많았음을 시사했다. 또 “노 대통령 당시 한국 사회에서 미국을 바라보는 시각이 가장 좋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허바드 전 대사는 한미동맹에 대해 ‘팔방미인 동맹(well-rounded alliance)’이라고 표현했다. 북한 도발 억제를 위한 군사동맹에서 출발했지만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정치동맹,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통한 경제동맹으로 두루 확장되면서 다른 나라들이 부러워할 만한 모범 동맹으로 성장했다는 것.

그는 “이제 한미동맹은 ‘소프트파워’ 동맹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치 군사 경제 분야를 넘어 문화 교육 국제협력 등의 분야에서도 양국 간 동맹 의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한미 소프트파워 동맹을 위해 자신이 이사장으로 있는 코리아소사이어티처럼 미국에 한국을 다방면으로 소개하는 외교 단체가 많이 생겨 났으면 한다는 기대를 피력했다.

그는 현재 미국의 대북 정책에 대해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비핵화에 대한 생산적인 조치를 내놓기 전까지는 대화를 위한 대화를 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고수해야만 북한 김정은 체제의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는 것. 그는 김정은 리더십에 대해 “몇 달 전까지 핵과 미사일 발사 시험에 나서는 등 도발을 일삼더니 최근에는 개성공단 재가동으로 화해 제스처를 보이는 혼란스러운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며 “내부적으로 김정은 체제가 공고화되는 데 많은 장애물이 있다는 신호”라고 해석했다.

그는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재연기, 한미 원자력 협력 협정 개정은 한미관계에 갈등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소지가 있다”며 “전작권보다 원자력 협정이 더 시간이 오래 걸리고 양국 간 합의 도달이 어려운 이슈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역사적으로 볼 때 한미관계에서 군사적 입장 차는 빨리 해결하려는 양국의 의지가 있는 반면 원자력협정은 미국의 핵정책, 민간 분야 협력 문제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장기화될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다.

허바드 전 대사는 ‘한미동맹은 그냥 강한 동맹이 아니라 최강의 동맹’이라고 강조했다. 한미관계가 쉽지만은 않았던 시절 주한 미 대사를 지내며 잠 못 드는 밤도 많았지만 다시 한번 주한 미 대사를 하라면 매우 즐거운 마음으로 하겠다”는 농담을 건네 한국에 대한 식지 않는 애정을 보여 줬다.

워싱턴=정미경 특파원 mickey@donga.com
#한미동맹#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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