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파도가 흔들어도… 지킨다, NLL”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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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 60주년… 서해 NLL을 가다
“전우들이 피로 지켜낸 생명선… NLL 사수 자부심 갖고 복무”

긴장의 바다로 출항 231편대 소속 고속정이 연평도 인근의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경비하기 위해 ‘연평도 고속정 전진기지’에서 출항하고 있다. NLL에서 전진기지까지는 3.5마일(약 6.5km)에 불과하다. 북한 경비정들이 30노트(시속 약 55km)의 속도로 내려오면 단 5분 만에 도착한다. 임무에 나선 고속정 편대는 짧게는 한두 시간, 길게는 예닐곱 시간씩 바다 위를 누비며 경계를 선다. 해군 제공
긴장의 바다로 출항 231편대 소속 고속정이 연평도 인근의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경비하기 위해 ‘연평도 고속정 전진기지’에서 출항하고 있다. NLL에서 전진기지까지는 3.5마일(약 6.5km)에 불과하다. 북한 경비정들이 30노트(시속 약 55km)의 속도로 내려오면 단 5분 만에 도착한다. 임무에 나선 고속정 편대는 짧게는 한두 시간, 길게는 예닐곱 시간씩 바다 위를 누비며 경계를 선다. 해군 제공
어떤 표지석도 없었다. 지도상에 붉게 그어져 있던 선도 보이지 않았다. 검푸른 파도만 출렁이고 있었다.

그래도 들리는 듯했다. 제2연평해전에서 참수리 357호정을 지휘하다 장렬히 전사한 윤영하 소령(해사 51기)의 목소리.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 중상을 당했음에도 전우들을 돌보기 위해 고속정 곳곳을 뛰어다녔던 고 박동혁 병장의 숨결.

조용히 서 있던 강형구 고속정 231편대장(해사 52기·소령)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이곳이 전우가 흘린 피로써 지켜낸 우리의 생명선, 서해 북방한계선(NLL)입니다.”

6·25전쟁 정전 60주년을 맞아 기자가 찾아간 NLL에는 고요한 긴장감이 흘렀다. 1990년대 후반 이후 북한이 끊임없이 NLL 인근에 도발을 감행하면서 NLL은 ‘남북대결의 상징선’처럼 인식됐다. 그것이 북한 도발의 목적이기도 하다. 최근 제2차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의 공개로 ‘NLL 포기 논란’이 일면서 NLL은 다시 출렁거리고 있다.

“출항요원 배치.”

11일 오후 6시 정각. ‘부웅∼부웅∼’ 요란한 사이렌과 함께 출항준비를 알리는 방송이 나오자 고속정 231편대 승조원들이 서둘러 갑판 위로 뛰어나갔다. 고속정에 시동이 걸리는 순간 수병들은 기지에 묶어놓은 밧줄을 풀기 시작했다. “빨리 움직여”란 선임 부사관의 다급한 목소리에 수병들의 움직임은 더욱 빨라졌다. 첫 사이렌이 울리고 2분 정도 지났을까. 고속정은 이미 ‘연평도 고속정 전진기지’를 벗어나 망망대해로 나아가고 있었다. 강형구 편대장은 “긴급출동이 떨어지면 5분 안에 출발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훈련을 통해 숙달돼 있어 그보다 더 빨리 기동한다”고 설명했다.

기지에서 출발한 지 10여 분도 되지 않았지만 고속정은 이미 NLL 1.5마일(2.8km) 남쪽 해상에 도착했다. NLL은 유엔사령관이 정전협정의 안정적 관리를 위해 1953년 8월 30일에 설정한 남북한 간 해상경계선이다. 당시 유엔군은 백령도 연평도 등 서해 5개 도서와 북한 지역 간의 중간을 연결해 NLL을 설정했다. 해군 측은 “정전협정 체결 이후 해군력이 우세한 남한 해군이 북한 해역으로 침범할 가능성을 배제하고 오히려 열세에 있던 북한 해군을 보호하는 의미가 더 컸다”고 설명했다.

▼ “5분내 출동 완료”… NLL 사수 빈틈이 없다 ▼

서해 북방한계선(NLL) 남쪽 해상을 지키는 해군 고속정 장병들이 선상의 K-6기관총 사대에서 경계 근무를 서고 있다. 해군 제공
서해 북방한계선(NLL) 남쪽 해상을 지키는 해군 고속정 장병들이 선상의 K-6기관총 사대에서 경계 근무를 서고 있다. 해군 제공
○ NLL을 지킨다는 자부심

연평도를 비롯해 백령도, 대청도, 소청도, 우도 등 NLL에 인접한 서북 5도(島)는 수도권 서측해역 방어의 최전방 기지다. 황해도와 경기도 연안에 근접한 지리적 이점을 지녀 남북한의 해군력이 집중돼 있다. 강 편대장의 지휘 아래 231편대는 연평도 인근 해역에서 NLL을 사수하고 있다.

2개 편대 총 4척의 고속정이 연평도 주변을 경비하고 있다. 교대로 출동에 나서지만 긴급 상황 발생시 고속정 4척이 함께 임무를 수행하기도 한다. 전진기지에서 출발하면 짧게는 한두 시간, 길게는 예닐곱 시간씩 바다 위를 누비며 경계를 선다. 북한의 도발 위협이 거셌던 3, 4월에는 하루 20시간 이상 바다 위에 있기도 했다. 그럴 때면 햇반 라면 등 비상식량으로 끼니를 해결한다.

적의 해안포 사거리에 노출돼 있는 최전방, 파도에 쉴 새 없이 흔들리는 갑판, 장정 한 사람이 지나가기에도 버거운 좁은 실내 공간 등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하지만 231편대 대원들은 NLL을 사수한다는 자부심으로 똘똘 뭉쳐 있다. 강 편대장은 “정치권의 논란과 상관없이 우리의 해상 경계선인 NLL을 목숨 걸고 지켜내겠다는 각오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대연 상병(24)도 “비록 몸은 힘들지만 NLL을 지킨다는 자부심을 갖고 당당히 근무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계임무를 마친 또 다른 고속정 2척이 11일 오후 8시경 다시 ‘연평도 고속정 전진기지’로 돌아왔다. 연평도 부두로부터 1마일(약 1.85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전진기지는 고속정의 쉼터와 같은 곳이다. 연평도와 NLL을 지켜야 하는 고속정이 교대로 잠깐 들러 식사를 하고 휴식을 취하기 때문이다. 2층은 기지 대원들이, 1층은 고속정 대원들이 이용한다. 편대장이 1층에 마련된 편대장실에서 휴식을 취하는 동안 고속정 대원들은 트레드밀(러닝머신)이 설치된 체력단련실에서 운동을 한다. 휴게실에서 매점을 이용하면서 피로를 푼다.

전진기지는 태풍이 와도 끄덕 없을 만큼 견고함을 자랑한다. 자체 무장을 갖춰 긴급 상황 시 즉각 대응도 가능하다. 2012년 7월 기지대장으로 부임한 황왕연 준위는 지난 1년 동안 전진기지를 나와 연평도를 벗어난 것은 15일에 불과하다. 그는 “긴급 상황이 많은 탓에 자리를 비우는 것이 편치 않다”고 말했다. 비록 식사와 휴식은 전진기지에서 하지만 고속정 편대원들의 취침은 전진기지가 아닌 고속정에서 이뤄진다. 새벽에 긴급출동이 걸렸을 때 즉각 출동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 NLL의 빈틈을 노리는 중국어선

12일 오전 6시 반경 짙게 드리운 해무(海霧)를 연신 바라보며 초조하게 기다리던 어선들은 출항 허가가 떨어지자 서둘러 배를 몰아 바다로 나갔다. 덩달아 고속정들의 움직임도 바빠졌다. 고속정 편대는 해경과 함께 NLL 근방에서 조업하는 우리 어선이 실수로 NLL을 넘지 않도록 통제하고 북한군의 위협으로부터 어선을 보호하는 역할도 맡고 있다.

최근에는 NLL에서 불법조업을 하는 중국어선을 단속하는 일도 부쩍 늘었다. NLL을 둘러싼 남북 간의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면서 우리 어선과 북한 어선이 NLL 인근 해역에서 조업하기를 꺼리자 그 틈을 노려 최근 중국 어선들이 불법조업을 하는 일이 잦아졌다. 중국어선의 무차별적인 남획으로 어장이 조기에 황폐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어민 사이에 제기되면서 해경과 함께 중국어선의 불법조업을 단속하는 일이 고속정 편대의 중요한 임무가 됐다.

어선 보호 임무를 수행한 고속정 편대가 12일 오전 10시경 다시 전진기지로 귀환했다. 출동과 복귀가 반복되는 일상에 지칠 법도 하지만 강 편대장은 “이곳은 매순간이 실전”이란 말로 결연한 각오를 전했다.

“NLL에서 이곳 전진기지까지는 3.5마일(약 6.5km)에 불과합니다. 북한 경비정들이 30노트(시속 약 55km)의 속도로 내려오면 단 5분 만에 이곳에 도착합니다. 언제든 북한과 맞부딪칠 수 있다는 생각에 잠시도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고 있습니다.”

연평도=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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