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도 野도 대기업 때리기… 대형마트 규제법안만 1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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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9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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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민주화에 갇힌 국회

“각 정당이 선거 전에 내놨던 기업규제 공약들을 다 추진하긴 어렵지 않겠어요?”

올 4월 총선 직후 동아일보 취재팀이 30대 그룹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에서 최고경영자(CEO)와 주요 임원들이 보였던 반응이다. 정치권이 선거 기간 중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 분위기에 휩쓸려 각종 규제공약을 쏟아낼 수 있지만 선거 후에 한국경제가 처한 현실을 냉정히 판단한다면 설마 무리한 공약들을 입법으로 현실화할 수 있겠냐는 의문이었다.

국회 개원(開院) 석 달이 지난 지금 기업인들의 이 같은 전망은 ‘헛된 희망’에 그치게 됐다. 여야 총선공약의 핵심인 ‘부당 하도급 거래에 대한 처벌 강화’ ‘대기업 총수 사면제한’은 물론이고 순환출자 금지, 대형유통업체 영업제한 등 초강경 법안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고 있다. 규제법안 발의 경쟁에는 여야가 따로 없고, 관련 법안의 내용도 대동소이해 국회 통과로 현실화되는 건 시간문제나 다름없는 상황이다.

○ 엇비슷한 규제 법안 ‘홍수’


19대 국회에서 발의된 규제법안들의 면면을 보면 어느 당, 어느 의원실에서 나온 법률안인지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내용이 비슷한 경우가 많다. 숫자나 단어 한두 개만 다를 뿐 주요 내용이 대부분 겹치는 ‘카피 법안’이 양산되고 있는 것이다.

대규모 유통업체의 영업시간과 영업일을 제한하는 대형마트 규제법안이 대표적이다. 이종걸 민주통합당 의원이 발의한 ‘유통산업발전법 일부개정안’은 대형마트의 영업시간을 오전 10시에서 오후 9시까지로 제한했다. 같은 이름의 이노근 새누리당 의원의 법안은 영업허용시간이 ‘오전 10시∼오후 10시’인 것만 다를 뿐 내용은 동일하다. 영업시간, 영업일을 제한하는 대형마트 규제법안은 지금까지 총 14개가 국회에 제출됐다. 심지어 영업 규제시간마저 똑같은 법안도 이 중 5개다.

8건의 개정안이 발의된 공정거래법도 마찬가지다. 기업 부채비율 제한, 순환출자 금지 등을 골자로 하는 이들 법안은 ‘자본총액을 초과하는 부채 보유를 금지’, ‘자본총액의 1배를 초과하는 부채의 보유를 금지’ 등 어미나 조사 정도만 차이가 난다. 6건이 발의된 청년고용촉진법도 ‘정원의 3%’, ‘근로자 수의 100분의 3’ 등으로 같은 숫자의 표현법만 다르거나 ‘상시고용자’, ‘상시고용 근로자’, ‘정원’ 등 용어 차이만 있을 뿐 내용이 거의 같다.

규제법안 양산 경쟁에는 여야의 구분도 없었다. 취재팀의 분석 결과 양당 모두 기업 관련 법안 중 규제법안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새누리당은 ‘경제민주화실천모임’, 민주통합당은 ‘경제민주화추진의원모임’이라는 의원모임을 각각 만들고 경쟁적으로 비슷한 법안을 내놓고 있다.

전문가들은 “각 당이 경제민주화 이슈를 놓고 차별화를 모색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모임이름부터 법안 내용까지 거의 분간이 안 된다”고 지적한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의원의 실적이 발의법안 수로 판가름되는 상황에서 의원들이 업적과시를 위해 폐기된 법안을 재활용하거나 다른 의원이 내놓은 법안을 인용하는 경우가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 기업이 바라는 법안은 국회서 낮잠


경제계는 총선과 대선이 겹친 해의 ‘규제리스크’를 연초부터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별다른 대책을 세우지 못했다. 의원발의 법안은 정부입법과 달리 규제개혁위원회의 규제심사를 거치지 않기 때문에 정치적 분위기에 따라 과도한 쏠림현상이 나타날 소지가 크다. 특히 이런 분위기가 각 당의 대선 공약으로 이어지면서 정작 기업이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규제완화 법안의 통과는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게 경제계의 고민이다.

이미 일부 업계는 규제로 인한 타격을 받고 있다. 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 등 대형마트 3사의 4∼6월 매출은 영업시간 등에 대한 각종 규제로 매출이 약 3000억 원 줄고 고용도 3000여 명 감소했다. 유통업계는 대형마트의 휴무일이 월 4회로 늘어나면 약 9000명의 일자리가 더 없어질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거꾸로 규제완화 및 산업지원 법안이 보류됨에 따라 발생하는 ‘기회비용’도 만만치 않다. 금융투자협회는 자본시장통합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1만8000개의 일자리와 12조 원의 국민경제 생산유발효과가 생길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이 법안은 18대 국회에선 폐기됐고, 19대에서도 논의 자체가 거의 없는 상황이다.

송충현 기자 balgun@donga.com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경제민주화#국회#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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